광복 70주년 특별기획 - 김호기·박태균의 논쟁으로 읽는 70

(20) 창작과비평 대 문학과지성

김호기 | 연세대 교수·사회학

 

경향신문 2015.8.18

 

 

독일의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는 근대사회를 이끌어온 주체의 하나로 공론장’(public sphere)을 주목했다. 공론장이란 공적 토론이 이뤄지는 공간을 뜻한다. 공론장에서 제기되고 토론되는 담론은, 한편으로 국가정책에 영향을 미치고, 다른 한편으론 시민을 계몽시킨다. 서구사회든 우리 사회든 이 공론장을 주도해온 것은 신문과 방송, 그리고 잡지였다. 정보사회가 도래하면서 인터넷 공간이 새로운 공론장의 중심을 이뤄왔지만, 1990년대 이전에는 잡지가 신문과 방송 못지않은 담론적 영향력을 행사했다.

 

한국 현대사에서 주목할 잡지는 월간과 계간으로 나눠볼 수 있다. ‘사상계’, ‘신동아’, ‘등이 대표적인 월간지였다면, ‘창작과비평’(이하 창비)문학과지성’(이하 문지) 등이 대표적인 계간지였다. 종이 매체에서 일간지, 월간지, 계간지는 인간의 삶의 리듬에 각각 대응한다. 특히 계절마다 나오는 계간지는 사회구조와 시대의 흐름을 고민하고 성찰하기에 적합한 매체다. 최근 삶의 속도가 빨라지면서 계절에 따른 대응이 낡은 방식이 돼버린 감이 있지만, 논쟁으로 광복 70년을 돌아보는 이 기획에서 계간지의 기여를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1970년대는 창비와 문지의 시대였다.

 

창비 대 문지의 라이벌 구도

 

창비와 문지의 활동을 논쟁 구도로 파악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두 계간지가 1970년대 담론을 이끌어온 대표적 라이벌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창비를 주도한 이들이 백낙청(서울대 명예교수, 영문학), 염무웅(영남대 명예교수, 독문학), 김윤수(전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였다면, 문지를 주도한 이들은 김현(전 서울대 교수, 불문학), 김병익(문학과지성사 상임고문), 김치수(전 이화여대 교수, 불문학), 김주연(숙명여대 석좌교수, 독문학)이었다.

 

이들 가운데 창비와 문지의 사유를 대변해온 두 사람은 백낙청과 김현이었다. 김윤식(서울대 명예교수, 국문학)에 따르면, ‘추상·이론·주장·논리를 세우는 게 인간 본질에 속하는 것임을 강조하는 백낙청과 자기의 경험으로 환원되지 않는 어떤 사상도 믿지 않는다고 주장한 김현의 문학사적 라이벌 의식은 1970년대 지성사의 한 장관이었다(김윤식, <문학사의 라이벌 의식>, 2013). 1970년대와 80년대 대학을 다닌 인문·사회과학도들은 백낙청과 김현의 크고 작은 지적 세례를 받으며 성장했다.

 

창비와 문지가 가졌던 문제의식을 가장 잘 보여주는 텍스트는 김병익과 염무웅의 대담인 창작과비평, 문학과지성을 말한다’(<동방학지>, 2014)이다. 백영서(연세대 교수, 역사학)의 사회로 열린 이 대담에서 김병익과 염무웅은 창비와 문지의 창간, 주요 활동, 폐간을 회고한다. 두 계간지의 라이벌 의식을 살펴보기 전에 먼저 주목할 것은 창비와 문지가 문학지였던 동시에 종합지였다는 점이다. 두 계간지 모두 시와 소설, 평론은 물론 역사와 사회에 관한 다양한 담론 및 분석을 다뤘다.

 

염무웅에 따르면, 1966년 창간에서 1980년 폐간까지 창비를 지탱했던 것은 민족주의와 민중주의였다. 민족을 앞에 세우되 그 실천적 주체를 민중으로 설정해 좌우의 극단적 편향을 모두 넘어서고자 했다. 이우성, 강만길, 임형택, 이오덕 등의 인문학 담론과 송건호, 리영희, 박현채, 한완상 등의 사회과학 분석을 대중에게 전달한 것은 창비의 중요한 기여였다. 문학 계간지를 넘어서서 좁게는 유신체제를 비판하고, 넓게는 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에서의 담론적 구심 역할을 창비는 떠맡았다.

 

김병익에 따르면, 1970년 창간에서 1980년 폐간까지 문지를 관통했던 정신은 자유주의와 시민주의였다. 문지의 편집위원들은 자유주의적이고 시민주의적 성향을 갖고 있었다. 민족주의와 민중주의에 담긴 권위주의적이며 집단주의적 성향을 고려할 때 근대적 개인주의를 중시한 문지 편집위원들이 자유주의와 시민주의에 친화성을 느낀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다. 또 문지는 시민사회와의 연대보다는 지식사회와 지식인의 자율성을 상대적으로 더 강조했다.

 

주목할 것은 이러한 차이점과 더불어 관찰할 수 있는 공통분모다. 1970년대라는 당대의 관점에서 볼 때 창비와 문지는 문학의 장() 안에서 현대문학으로 대표되는 기성세대의 문학잡지에 맞섰고, 지식의 장과 정치의 장 안에서 유신체제라는 권위주의와 대결했다. 보수적 권위주의에 대항해 창비의 민족적 민중주의와 문지의 시민적 자유주의가 한편으론 경쟁하고, 다른 한편으론 연대해온 셈이었다. 당시 민족적 민중주의가 진보를 대표하는 이념이었다면, 시민적 자유주의는 중도 또는 중도진보를 대변하는 이념이었다.

 

1980년 신군부 세력의 정기간행물 취소 조치로 창비와 문지는 폐간됐다. 19876월항쟁으로 열린 민주화시대를 맞이해 1988년 창비는 복간했고, 문지는 문학과사회로 계승됐다. 창비와 문학과사회는 최근까지 문화적·사회적 담론의 장을 제공해 왔지만, 두 계간지의 영향력이 1970년대처럼 두드러지지는 않았다. 그 일차적인 이유는 매체 환경의 변화에서 찾을 수 있다. 정보사회의 진전으로 우리 삶의 속도가 가속화하면서 현실의 빠른 변화를 계간지 형식으로 담아내는 데는 한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비판지성의 의미

 

창비와 문지에 대한 회고는 자연스레 필자의 젊은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197910월 박정희 대통령의 서거에서 19805월 광주항쟁까지의 격동의 시대에 필자는 대학 1학년과 2학년을 보냈다. 대학에 입학하자 선배들은 계절이 바뀌면 창비와 문지를 꼭 읽어보라고 권했고, 리영희의 <전환 시대의 논리>(창작과비평사, 1974)와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문학과지성사, 1978)을 빌려줬다. 창비, 문지와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됐다. 안타깝게도 이 만남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앞서 말했듯 두 계간지는 1980년 여름호를 낸 뒤 폐간됐기 때문이다.

 

1980년대 초·중반 학부와 대학원을 다니면서 도서관 서가에 놓인 창비와 문지를 찾아 여러 사람들의 글을 읽었다. 창비와 문지의 편집위원들은 물론 이 계간지에 글을 기고한 이기백, 리영희, 강만길, 한완상 등의 글들은 젊은 시절의 생각에 큰 영향을 미쳤다. 문학도가 아닌 사회과학도의 시선에서 두 계간지로부터 내가 배운 것은 창작과 비평에서의 비평문학과 지성에서의 지성의 의미였다. ‘비평비판이란 말로 바꾸어 쓴다면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에 대한 일관된 비판은 창비의 정신이었다. 그리고 영혼 없는 지식을 넘어서 현실에 대한 살아있는 균형감각을 가져야 하는 지성은 문지의 정신이었다.

 

1970년대 창비와 문지에 실린 글들을 다시 읽어보면 적잖이 낡았다. 하지만 창비, 문지의 정신인 비판과 지성은 어두웠던 1970년대를 비춘 등불이었다. 어둠이 깊어질수록 등불은 더욱 빛나기 마련이다. 이러한 비판과 지성의 광휘를 위해 청년 및 중년 시절을 불살랐던 창비와 문지의 편집위원들에게 광복 70년을 맞이해 경의를 표하고 싶다. 지식인의 마지막 거점이자 정체성이라 할 수 있는 비판과 지성을 위한 후배세대의 분발이 더욱 요구된다.

 

1970년대 계간지를 통해 알려진 사회과학자 가운데 가장 큰 관심을 모았던 이는 언론인 리영희(1929~2010)일 것이다. 신문기자 출신인 그는 창비에 베트남 전쟁’ 1·2·3을 발표해 한국전쟁 이후 우리 사회를 규정해온 냉전분단체제와 반공주의에 도전했다. <전환시대의 논리>1970년대 리영희의 대표 저작이었다. 이 책은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 변화하는 동아시아 정세를 다뤘다. 중국의 재인식을 중심으로 닉슨 독트린과 미국의 대외정책, 일본의 군사적 재무장화, 그리고 베트남 전쟁의 역사와 현실에 이르기까지 생생한 분석과 예리한 통찰을 통해 냉전분단체제에 갇혀 있던 시민의식의 각성을 요구했다. 출간되자마자 선풍적 인기를 누린 <전환시대의 논리>는 정부에 의해 판매금지를 당했지만, 당시 젊은 세대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현재의 시점에서 그가 제시한 몇몇 가설들은 더러 낡았고, 맞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주체적 관점에서 탈냉전적 국제질서를 모색한 것은 더없이 선구적인 통찰이었다.

 

리영희만큼 극단적으로 상반된 평가를 받는 지식인도 드물다. 보수 세력에겐 의식화의 원흉으로 비판받았지만, 진보 세력에겐 사상의 은사라는 최고의 찬사를 받았다. 그가 겪었던 아홉 번의 연행, 다섯 번의 기소 또는 기소 유예, 세 번의 징역은 민주화 세력의 역사를 그대로 보여준다. 그는 우리 현대사에서 드물고 용기 있는 지식인의 상징이었다.

 

스탕달, 살롱 공론장, 그리고 소셜 미디어

 

[고전과 소셜 미디어-2]공론장의 구조 변동

 

지디넷코리아 김익현 기자 2015.02.23.

 

"부당한 경멸을 맞으며 죽음을 맞이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서 한마디 하고자 합니다. 여러분, 나는 여러분의 계층에 속하는 영예를 얻지 못했습니다. 보다시피 나는 자신의 보잘 것 없는 운명에 반항한 일개 농부입니다." - '적과 흑' 중에서.

 

작가 스탕달의 분신이나 다름 없는 쥘리앵 소렐은 야심만만한 평민 청년이었다. 준수한 외모와 타고난 총명함을 겸비했던 쥘리앵은 가정교사로 일하던 집 안주인인 레날 부인의 마음을 사로잡지만, 남편 레날 씨에게 들켜서 쫓겨난다.

 

 

신분상승을 꿈꾸던 쥘리앵 소렐에겐 청천벽력 같은 사건. 하지만 레날가에서 쫓겨난 사건은 쥘리앵에겐 오히려 전화위복이 됐다.

 

이후 명문 후작의 거만한 딸 마틸드를 유혹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쥘리앵은 드디어 신분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겠다는 꿈에 부풀어 있다.

 

늘 그렇듯, 세상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야심만만한 평민 청년의 앞을 가로막은 것은 옛 연인이었다. 결혼식 전날 전 연인이었던 레날 부인의 밀고장이 날아들면서 모든 게 물거품이 되고 만 것. 분노한 쥘리앵은 곧바로 레날 부인을 찾아가 총탄 두 발을 날린 뒤 스스로 경찰에 체포된다.

 

앞에서 인용한 문구는 '저격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된 쥘리앵 소렐의 최후 변론 중 한 대목이다. 발버둥쳤지만 끝내 귀족 사회에 편입되는 데 실패한 한 평민의 처절한 고백이 가감없이 배어 있다.

 

'적과 흑'을 쓴 스탕달은 쥘리앵 소렐과 비슷한 삶을 살았다. 일개 하사관 출신인 나폴레옹이 유럽 전역을 호령하는 것을 목격한 스탕달은 그 무렵의 야심 많은 평민 청년들처럼 신분상승이란 거대한 꿈을 가슴에 품고 있었다. 쥘리앵 소렐의 절규가 더 가슴에 와닿는 것은 바로 작가의 분신이나 다름 없기 때문일 것이다.

 

18세기 살롱, 21세기 소셜 미디어의 원형?

 

이번엔 스탕달의 적과 흑과 비슷한 시기 유럽을 다룬 또 다른 작품으로 눈을 돌려보자. 신방과 출신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음직한 책. 하지만 끝까지 읽은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은 책. 바로 위르겐 하버마스의 '공론장의 구조변동'이다. 교수 자격 논문을 발전시킨 이 책은 하버마스 사상의 젖줄이나 다름 없는 중요한 의의를 갖고 있다.

 

하버마스는 이 책에서 자본주의 발전과 함께 국가와 시민 사회 사이에 존재하는 또 다른 사회 영역에 주목한다. 이 곳이 바로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의 중간에 자리잡고 있는 공론장이다.

 

하버마스는 부르주아 공론장의 맹아를 17세기 후반 영국으로 잡고 있다. 영국의 뒤를 이어 프랑스에서는 18세기, 그리고 독일에서는 그보다 좀 더 늦게 부르주아 공론장이 탄생했다는 것이 하버마스의 기본 입장이다.

 

물론 하버마스가 이 책에서 진짜 관심을 갖는 것은 '공론장''구조 변화'. 다시 말해 근대 시민사회의 발전과 함께 공론장이 재봉건화되면서 사회적 개인들이 비판적 청중 역할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여기서 관심을 갖는 것은 재봉건화되기 이전의 공론장, 즉 프랑스와 영국에서 18세기에 융성했던 공론장이다. 하버마스는 이 시기 카페와 살롱을 민주적 토론이 융성했던 공론장의 모범으로 평가하고 있다. 하버마스의 글을 그대로 옮겨보자.

 

"1680년과 1730년 사이에 번성했던 커피하우스와 섭정 시기와 혁명 사이 기간의 살롱이다. 이것은 영국이나 프랑스에서 처음에는 문예적 비판의 중심지였으며 후에는 정치적 비판의 중심지가 된다. 여기서 귀족주의적 사교계와 부르주아적 지식인들 사이에서 교양층의 평형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102)

 

당시 카페와 살롱은 문예토론의 중심지였다. 요즘 표현으로 하자면 기본 플랫폼이나 다름 없었다.

 

하버마스의 표현을 그대로 옮기자면 "18세기의 위대한 문필가들 중 먼저 이러한 담론으로, 즉 아카데미에서의 강연과 무엇보다도 살롱에서의 담론으로 먼저 자신의 기본 생각을 토론에 부치지 않았던 사람은 거의 없다(105)”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막힌 사회와 열린 사회

 

다시 '적과 흑' 얘기로 돌아가보자. '적과 흑' 주인공인 쥘리앵 소렐을 힘들게 한 것은 꽉 막힌 사회 구조였다. 자신의 야심을 맘껏 펼칠 수 없는 폐쇄된 구조 때문에 숨이 막혔다. 유럽에서 한 때 번성했던 카페와 살롱 중심 공론장은 숨막힐 듯한 폐쇄적인 사회 속에 자리잡은 자유의 공간이었다. 그 때문에 18세기 유럽의 카페, 살롱 공론장에서 블로그와 SNS를 비롯한 시민 저널리즘의 원형을 찾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여기서 조금 비약을 해보자. ‘적과 흑의 폐쇄된 구조는 전통 언론들이 이슈를 독점하던 시대에 비유할 수 있지 않을까? 모든 주장을 언론을 통해서만 유통되던 시절. 쥘리앙 소렐처럼 야심많은 젊은이들도 귀족 사회 속에 편입되지 않으면 아무런 일도 할 수 없었던 것처럼, 제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라도 기자들의 펜을 빌리지 않으면 자신들의 주장을 펼칠 수 없었던 시대.

 

하버마스가 카페와 살롱문화를 그토록 높이 평가한 것은 이런 폐쇄적 구조를 무너뜨린 힘 때문이었다. 그의 표현을 그대로 옮기자면 "만찬회, 살롱, 커피하우스가 공중의 범위와 구성, 교제 스타일, 논의의 풍토, 주제의 정향에 있어 아무리 다르다 하여도, 이들 모두는 경향적으로 사적 개인들간에 벌어지는 지속적 토론을 조직화"했다.

 

특히 눈에 띄는 강점은 바로 '성역없는 토론' '계급장을 뗀 토론'이 가능했다는 부분이었다. 역시 '공론장의 구조변동'에서 그 부분을 그대로 옮겨보자.

 

"첫째, 지위의 평등을 전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지위 전체를 도외시하는 일종의 사회적 교제가 요구된다. 서열의식에 반하여 경향적으로 동등함의 예외가 관철된다.

 

 

둘째, 이러한 공중의 토론은 이제까지 의문시되지 않았던 영역의 주제화를 전제한다.

 

셋째, 문화를 상품 형태로 전화시킴으로써 문화를 비로소 토론능력을 갖춘 문화로 만들어낸 동일한 과정이 공중의 원칙적 비폐쇄성을 가져온다." (107~108)

 

소셜 미디어의 또 다른 특징은 끼리 끼리모이는 성향이 강하다는 점이다. 그래서 일부 학자들은 공적담론의 실종을 우려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부분에선 특정 이슈에 대해 좀 더 깊이 있는 토론이 가능하다는 해석도 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커피하우스와 살롱의 시대엔 어땠을까? 미셸 스티븐스의 고전적 저작인 뉴스의 역사에 따르면 당시에도 상황은 비슷했다. 흥미롭게도 커피하우스도 나름대로 다루는 주제가 명확했단 얘기다. 역시 그 부분을 그대로 옮기면 이렇다.

 

"당시 런던은, 오늘날 수많은 잡지들이 쏟아져나와 잡지 홍수 시대를 이룬 것처럼, 수많은 커피하우스로 포화 상태를 이루었다. 그래서 커피하우스는 작은 규모의 특정 손님을 찾아야했는데, 그 때문에 증권에 관심 있는 손님이 모이는 커피하우스는 증권 거래소, 테니스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주로 모이는 커피하우스는 테니스 코트라는 별명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뉴욕 커피하우스는 식민지 국가와의 무역에 대해 토론하는 것에 관심이 많은 남성들의 출입이 많은 곳이었다. 그리스 커피하우스는 학자들이 많이 출입했다. 연국인 커피하우스와 문학인 커피하우스도 있었다." ('뉴스의 역사' 51)

 

스탕달의 적과 흑이 그리는 세계는 암울하다. 신분의 벽이 강하게 작용하는 폐쇄된 사회다. 굳이 따지자면 나폴레옹 몰락 이후 프랑스 전역을 강타한 반동 열풍의 영향도 적지 않게 작용했던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

 

하지만 적과 흑을 썼던 평민 스탕달은 파리의 살롱 문화에서 정신적인 자유를 만끽했다. 우리에겐 백과전서파로 널리 알려진 평민 디드로 역시 살롱의 스타였다.

 

하버마스의 공론장의 구조 변동은 바로 그 자유의 시대에서 논의를 시작하고 있다. 그 논의에서 우리는 21세기 소셜 미디어의 전형적인 모습을 읽어낼 수 있다. 그게 고전의 힘이요, 위대한 학자의 통찰력이 아닐까?

 

http://cafe.daum.net/kadministration

 

공론장(public sphere ; 공공영역, 공공권역)

 

개념

 

공론장이란 사회구성원간의 합리적 토론을 통해서 사회구성원들의 보편적 이익에 관한 사회적 합의(social consensus)를 도출하는 담론적 공간을 의미한다. 공론장 개념은 하버마스에 의해 구체화된 것으로서 하버마스의 의사소통이론 및 인간의 이성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한 사회의 합리적 기획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하버마스에 의하면 공론장이란 무엇보다도 공론에 근접하는 어떤 것(something approaching public opinion)이 형성될 수 있는 사회적 삶의 영역을 의미한다. 공론장은 이성에 입각한 토론을 통해 사회전체에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규범과 가치에 대한 합의를 창출하며 국가 권력에 대한 합리적 정당화를 제공하는 공간이다. 이러한 공론장의 형성을 통해서 사회구성원 개개인은 중세의 절대적 국가권력 앞에 무기력한 피동적 객체(object)로서의 지위를 극복하고, 근대 시민사회의 적극적 구성주체이자 스스로 국가권력의 정당성 여부를 결정지을 수 있는 주체(subject)로서의 지위를 획득하게 된다.

 

발전배경

 

하버마스의 공론장 이론은 현대 사회의 위기 특히 현대 사회의 정치적 위기에 대한 비판이론가들의 계몽주의 비판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발전한 이론이다. 하버마스의 공론장 이론은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의 비판이론 특히 문화산업의 확산 및 이로 인한 문화산업의 수동적 소비자로서의 일반시민의 지위 하락과 이에 수반되는 사회구성원들간의 진정한 공론의 실종에 관한 비관주의적 공론관을 극복하기 위한 의도로 형성되었다. 하버마스는 현대 사회의 위기를 체제에 의한 생활세계의 식민화 현상 및 이로 인한 정치체제의 정당성 부재 등의 문제로 진단한다. 하버마스는 정치의 영역을 사회와 국가의 매개적 영역으로 규정하며, 이 정치 영역이 독자성을 잃고 사적 이익과 국가적 개입의 양방향에서 침식당한 것이 현대의 정치 문제의 근본적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하버마스는 현대 정치의 이러한 근본적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일반시민의 활발한 정치참여가 보장되고 이들의 건전한 이성에 입각한 합리적 토론을 통해 공론이 형성되어야 한다고 보고, 이를 가능하게 하는 기제로서 공론장 개념을 발전시키게 된다.

 

이론적 모형 및 제도화

 

공론장이라는 개념은 본래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에 기원을 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스에서의 공론장은 적극적인 정치참여자였던 시민들이 서로 동등한 주체로서 폴리스의 문제를 자유롭게 토론하던 의사소통 공간이었다. 하버마스는 이러한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에서 이루어지던 활발한 시민들의 정치 참여 및 이들간의 건전한 의사소통에 의거한 도시공동체의 합리적 운영 등에서 공론장 개념의 원형을 찾고자 하였다.

 

하버마스가 현대 정치 문제의 해결점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특히 중시하는 공론장 개념은 16 세기의 상업자본주의와 원격지 무역의 발달과 함께 유럽에서 발생한 부르주아 공론장(자유주의 공론장 모델)”이다. 절대왕정 및 교회의 권위가 무너지고 근대국가가 형성되기 시작하던 이 무렵부터 공적 권위는 더 이상 일반시민들과 무관한 분리된 무소불위의 불가침적 영역으로서의 지위를 상실하게 된다. 근대국가의 성립시점부터 공적권위는 절대왕정의 궁정에서 분리되어 사회구성원들의 동의와 이들로부터의 정당성을 인정받은 합법적 권위로서 법과 정당한 강제력을 의미하기 시작하였다. 즉 기존의 일반시민과 무관한 특권적 정치세력으로부터 하향적(top down)으로 형성되어 집행되는 부당한 강제력으로서의 의미를 상실하고, 사회구성원들간의 건전한 의사소통과 사회적 합의를 통해 그 존재의 의미 및 이유를 추인 받는 상향적(bottom up) 개념으로 전환되게 되었다. 이러한 공적권위의 개념적 전환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근대국가가 근거하게 된 시민사회의 성립 및 국가시민사회를 매개하는 중단영역으로서의 공론장의 형성활성화가 전제조건으로 충족되었기 때문이라고 하버마스는 주장한다.

 

하버마스는 자유주의적 공론장 모형이 형성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서 계급적사회적 배타성 및 평균적 자질과 교육수준이 높은 유산계급(Bourgeoisie)으로서의 공중이 구심점을 형성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이들 유산계급은 사유의 원리를 기본 축으로 삼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확산 및 이로 인한 사적인 영역의 급속한 발전이라는 시대적 상황에 편승하여 사유 재산권의 보호와 사적영역의 부당한 침해로부터의 보호 즉 시민사회의 형성 및 강화라는 문제에 공통된 이해관계를 갖고 있었다. 하버마스에 의하면 이러한 계급적 특성으로 인해 이들 유산계급간의 공통의제에 대한 공론 형성이 용이했으며 이들의 교육수준이 높았다는 사실이 이러한 점을 촉진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이들 유산계급은 정확한 정보의 전달 및 공론형성을 선도하는 정보전달 매체로서 신문의 기능을 활성화시킴으로서 공론형성을 용이하게 하였다.

 

이처럼 공적 권위의 영역과 시민사회의 경제적가족적 영역 사이에 형성된 부르주아 공론장은 국가와 시민사회의 중간영역으로서 국가권력의 정당성 제공 및 권력의 순치 및 순화 기능을 담당하였으며, 점차 그 기능이 공식화되면서 의회라는 형태의 제도화된 공론장으로서 변형되었다.

 

하버마스의 주장에 의하면 이러한 부르주아 공론장(자유주의적 공론장 모델)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의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보편적 접근가능성(general accessibility)을 갖추어야 하고 둘째, 어떠한 특권도 존재해서는 안되며(elimination of all privileges) 셋째, 보편적 규범과 합리적 정당화가 이루어지는 공간이어야 한다(discovery of general norms and rational legitimations).

 

하버마스가 주장하는 또 다른 공론장의 유형은 평민 공론장이다. 이는 부르주와 공론장을 가능하게 했던 정치 사회적 조건이 변화함으로 인해 국가권력의 합리적 순화 및 국가권력에 대한 정당성을 제공하는 비판적 토론의 장소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현대사회의 공론장 모형이라 할 수 있다. 평민 공론장의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언론의 상업화현상과 공중의 구심점 해체현상이라 할 수 있다. 언론의 상업화 현상으로 인해 언론매체의 정확한 정보전달 기능이 실종되고 정보의 왜곡과 호도현상이 만연되기 시작했으며, 이는 다시 문화산업의 성장과 함께 사회구성원의 비판적 기능을 마비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공중의 구심점 해체 현상은 자유주의 공론장 모형에서와 같이 사유재산권 보장과 사적영역의 보호라는 중추적 의제를 공유하는 교육수준과 평균자질이 높은 유산계급으로서의 공중이 더 이상 공통의 관심사를 찾기 어려운 일반대중으로 변질됨으로서 이들 구성원간의 자기규제력이 상실되고, 합리적이고 비판적 토론을 통한 사회적 합의의 도출이 불가능해지는 현상을 의미한다. 이러한 공론장 형성의 기본전제조건의 해체는 국민들의 복지국가에 대한 요구로 인한 국가의 자율성 증대 및 사적영역의 지속적인 위축현상으로 더욱 악화되었다. 이러한 평민적 공론장의 확산은 결국 사회구성원간의 이성의 공적 사용을 통한 비판적 토론 및 사회적 합의의 도출이라는 민주주의의 기본적 운영원리를 위협하게 됨으로서 현대 정치의 위기 나아가 현대 사회의 위기를 초래하게 된다는 것이다.

 

평가와 전망

 

이러한 하버마스의 공론장 이론은 인간의 이성에 대한 불신 및 도구적 합리성의 폐단에 대한 비판이론가들의 회의론을 극복하고 인간의 합리적 이성과 그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한 인간사회의 계몽 가능성과 합리적 사회건설에 대한 철학적 기초를 제공해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또한, 하버마스의 의사소통이론과 결부되어서 공론장 이론은 정보사회에서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인터넷 기술의 발달로 인해 등장한 가상공동체의 형성은 사회구성원간의 공론형성의 장으로서 기능할 수 있는 새로운 담론체계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버마스의 공론장 이론은 이러한 정보사회에서의 새로운 담론체계의 등장이라는 시대적 상황하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해주는 이론이라 할 수 있다. 하버마스의 공론장 이론은 또한 사회의 다원화로 인한 가치의 대립 및 사회적 갈등의 합리적 해결기제의 부족으로 인해 사회적 합의기능이 결여된 한국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평가할 수 있다.

 

참고문헌

 

장춘익 외(1996), 󰡔하버마스의 사상 - 주요 주제와 쟁점들󰡕, 서울 : 나남출판.

정호근 외(1997), 󰡔하버마스 : 이성적 사회의 기획, 그 논리와 윤리󰡕, 서울 : 나남출판사.

톰 록크모어 외 저, 임헌규 편역(1995), 󰡔하버마스 다시 읽기󰡕, 서울 : 인간사랑.

 

http://blog.naver.com/dydrkxks/220386291199

 

하버마스가 본 공론장의 역사와 문제점, 대안 2015.06.10.

 

<공론장의 역사>

 

1. 군주제 하의 과시적 공론장

 

- 군주가 지식인들을 불러서 연구, 공연 등을 시킨다. 이는 문화나 학문의 발전을 위함이 아니라 군주, 소수자의 권력을 과시하기 위함이다.

 

- 오픈되어 있지 않다. 비민주적.

 

2. 부르주아지(문예적, 사적인) 공론장 18세기 전반

 

- 부르주아 공론장의 맹아를 하버마스는 17세기 후반 영국으로 잡고 있다. 하버마스는 살롱을 민주적 토론이 융성했던 공론장의 모범으로 평가한다.- why? 폐쇄적인 구조를 무너뜨린 힘 때문이다. 성역 없는 토론, 계급장을 뗀 토론이 가능했다.

 

[공론장의 구조변동] 참고

cf) "1680년과 1730년 사이에 번성했던 커피하우스와 섭정 시기와 혁명 사이 기간의 살롱이다. 이것은 영국이나 프랑스에서 처음에는 문예적 비판의 중심지였으며 후에는 정치적 비판의 중심지가 된다. 여기서 귀족주의적 사교계와 부르주아적 지식인들 사이에서 교양층의 평형이 형성되기 시작했다."(102)

"18세기의 위대한 문필가들 중 먼저 이러한 담론으로, 즉 아카데미에서의 강연과 무엇보다도 살롱에서의 담론으로 먼저 자신의 기본 생각을 토론에 부치지 않았던 사람은 거의 없다(105)”

 

문화를 상품 형태로 전화시킴으로써 문화를 비로소 토론능력을 갖춘 문화로 만들어낸 동일한 과정이 공중의 원칙적 비폐쇄성을 가져온다." (107~108)

 

- 상공업의 발전과 더불어서 신흥 귀족층이 참여하여 자유로운 문예비평과 시사토론을 하는 사교모임과 살롱의 형태로 진화하게 된다. 살롱은 문예 토론의 중심지였다.

 

- 공적인 영역은 군주의 통제를 받기 때문에 사적인 영역으로 공론장이 형성된다. 자신들만의 영역을 만들기 위함이다.

 

- 소수 자산가들에 의한 공론장이다. 자신들의 영역을 만들기 위한 공론장으로 정치적으로 위협이 되지는 않는다.

 

(주로 자유를 외치는 소수 엘리트 자유주의자들)

 

3. 대중적 공론장 18세기 후반

 

- 정치적 관심의 확대와 함께 대중의 공론장이 등장.

 

- 자유를 누리던 소수의 엘리트만의 공론장이 아님. 부르주아지의 자유주의적 공론장과 다른 민주주의적 공론장이다. 평등을 중시!

 

- 공론장이 공적인 영역에 등장한다. 대중들이 공론장 안으로 들어온다.

 

- 모두가 평등하게 자유롭다! 그러면서 서로를 제약한다.

 

- 여론이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길 갈망하는 공중의 비판적 담론으로 성격이 굳어지면서 국가가 사회의 요구와 교감하게 만드는 수단이 되었다.

 

4. 과시적 공론장의 왜곡 = 공론장의 재 봉건화.

 

- 체계의 합리성만을 홍보하는 과시적 공론장이 돌아온다.

 

- 사람들은 보편적인 주권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지만 이미 시스템 하에 지배당하고 있다. 전혀 대중들이 체계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 그렇지만 민주주의라고 말한다.

 

- 목적에 대한 합의가 없다.

 

- 체계(관료적으로 운영되는 국가, 기업, 학교의 영역)의 논리가 지배하고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다. 목적에 대한 합의가 없다.

 

- 공론장이 홍보활동으로 조형됨에 따라 재 봉건화됨. 하버마스는 국가 간섭과 신문의 상업화 그리고 그것이 불러온 공론장의 재봉건화를 한마디로 대중 매체에 의해 만들어진 세계는 표면상으로만 공론장이다.1962”

 

1. 4번 공론장의 위기는 다르다. 세 번째에서 네 번째로 가는 과정에서 변화한 것. 한편에서는 근대 자본주의 체제자체에도 문제가 있고, 이것이 공론장을 어떻게 왜곡시키는지. 모든 사람들에게 언론에 자유를 주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그러면 왜 공론장이 왜곡이 됐는가?를 보아야한다.

 

하버마스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공론장의 구조적 변화이다. 근대 시민사회의 발전과 함께 공론장이 재봉건화 되면서 사회적 개인들이 비판적 청중 역할을 상실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공론장은 본래 이기주의나 개인주의에 대항해서 모든 사람들이 차별 없이 접근 가능한 공동의 공간을 이상적인 이념으로 가지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대부분의 공론장에서 정상적인 시민이라고 간주되는 특정한 집단이 정의의 당사자로 상정되고, 이들이 말하는 공공성은 그 밖의 다른 주체들을 억압하거나 배제하는 도구로 사용된다.

 

<하버마스가 말하는 대안>

 

: ‘공개성의 재확립’ - 사적 영역의 이익집단, 정당의 결정 과정에서의 투명성을 재고. 모든 과정이 공개성이라는 기준 위에서 다뤄줘야 한다. 전시적 공공성이 진정한 공론의 기반이 될 수 있다.

 

: 진리의 합의모델이 중요하다. 진리의 합의 모델이란 상대주의로 가는 것이 아니다. 상대주의로 가면 히틀러도 합리화 될 수 있다. 교육, 제도상에서 옳은 것이 아니라 실제 삶속에서 나에게 진리가 되어야 진정한 진리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사회 문제에 이름을 붙여주어야 한다. ex) 성차별!. / 공간을 만들고 / 조직을 통해서 정치적 조치가 가능해야한다.

 

참고문헌 : [공론장의 구조변동 : 부르주아 사회의 한 범주에 관한 연구]

 

[중앙일보 나현철] '작은 정부, 큰 시장'을 모토로 하는 신자유주의가 위기를 맞고 있다. '종주국'이라 할 미국이 금융위기를 맞으면서 정부의 시장 개입이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규제를 강화하거나 새로 마련하는 움직임도 분주하다. 외환위기 뒤 미국식 금융자본주의를 지향해온 한국에게도 남의 일이 아니다. 다음은 중앙SUNDAY 보도 전문.

 

2008 919. 후대의 역사가들은 이날을 미국은 물론 세계 자본주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날로 기록할지 모른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이날 금융위기를 잠재우기 위해 전방위 시장 개입과 공적자금 투입을 선언했다. 이는 경제의 작동은 시장에 최대한 맡기고 정부는 게임의 룰만 잘 관리하면 된다는 신자유주의 정신의 퇴장으로 해석할 만하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의 칼럼니스트인 크리스티나 프리랜드는 20일자 칼럼에서 로널드 레이건 시대가 공식적으로 막을 내렸다고 했다. 모기지 회사인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을 국유화하고 AIG에 구제금융을 투입한 데 이어 전방위 공적자금 투입이란 '마지노선'까지 넘은 미국이 지난 30년간 주창해 온 신자유주의 노선을 스스로 내던진 셈이 됐다는 것이다.

 

1980년 레이건 행정부의 등장 이후 미국은 규제 완화와 감세 등 '작은 정부와 큰 시장'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해 왔다. 특히 금융시장에 대한 정부의 직접 개입은 금기로 여겨 왔다.

 

하 지만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에서 비롯된 월스트리트의 붕괴가 상황을 바꿔놨다. 19일 부시 대통령은 '전례 없는 조치'를 하겠다고 공언했다. 대규모 공적자금을 통해 부실을 정리하겠다는 내용이다. 그는 심각한 위기로부터 미국 경제의 건전성을 지키기 위해 지금 행동에 나서야 한다며 정부 개입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개입의 폭은 상상을 초월할 전망이다. 미 정부는 8000억 달러 이상의 세금을 투입해 부실채권 처리 기구를 설립할 예정이다. 민주당은 여기에 더해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대규모 재정 투입 방안까지 요구하고 있다. 결국 이번 사태로 동원될 공적자금과 재정 투입 규모는 1조 달러를 넘어 2조 달러에 달할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그 과정에서 무수한 금융회사와 기업이 사실상 국유화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정부 는 새로운 시장 질서를 명분으로 파생상품 등에 대한 다양한 규제 카드를 내놓을 전망이다. 주간 비즈니스위크는 18“30년간 미국 경제정책의 근간을 이루던 규제 완화가 강화쪽으로 급선회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월스트리트 저널도 “80년대 이후 규제는 약해야 한다는 신념을 고수하던 미국 정부가 적극적 행동주의로 복귀했다고 전했다.

 

시장 개입을 반대하는 목소리는 미약하다. 보수파 공화당 의원 100명가량이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과 헨리 폴슨 재무장관에게 대형 금융회사를 더 이상 구제하지 말라고 요구하는 편지를 보낼 예정인 것 정도다. 이들은 구제 조치가 막대한 국민 세금을 축내는 것은 물론 도덕적 해이를 부추긴다지금은 기업이 아니라 납세자를 구제해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하 지만 시장은 부시 대통령의 조치에 두 팔을 들어 환영했다. 미국과 유럽·중국 등 세계 증시가 폭등했다. 주요 기업 CEO들도 시장의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일이라며 찬성 입장을 밝혔다. 스스로를 규제 철폐주의자로 규정해온 존 매케인 공화당 대통령 후보도 적절한 규제가 국민을 보호할 것이라며 입장을 바꿨다.

 

이제 미국식 신자유주의는 설 땅을 잃어 가고 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셉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는 금융위기는 장사가 잘될 땐 정부 개입을 거부하고, 위기가 닥치면 정부에 손을 벌리는 위선의 결과물이라고 지적했다. 거물 투자자인 조지 소로스는 지난 1월 다보스 포럼에서 금융시장의 자율성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인식이라며 '시장이 정부보다 효율적'이란 신자유주의의 근본 가정에 의문을 제기했다.

 

정 부의 적극적인 역할을 강조하는 케인스식 경제정책에 반기를 든 신자유주의는 79년 영국 대처 정부가 민영화와 감세, 복지 및 재정 축소를 추진하면서 유력한 정책 수단으로 떠올랐다. 80년 집권한 레이건 대통령의 '레이거노믹스'는 클린턴 행정부를 거쳐 부시 행정부로 계승됐다. 97년 말 아시아 외환위기는 '세계화''개방'으로 포장된 신자유주의를 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가 받아들이는 계기가 됐다.

 

조순 서울대 명예교수는 자본주의 시스템도 세월에 따라 노화하는 게 당연하다파국을 맞은 신자유주의의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외환위기 뒤 한국은 미국식 신자유주의 노선을 따라왔다종말은 아니더라도 한계가 드러난 이상 이를 추종해온 기본 노선의 수정이 필요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에볼라 창궐 기니, ‘과일박쥐사냥 여전미신풍습과의 싸움

헤럴드경제 2014-08-05

 

에볼라 바이러스의 공포가 세계를 휩쓸고 있는 가운데, 바이러스 확산을 필사적으로 저지하고 있는 서아프리카 지역 의료진들은 과일박쥐, 원숭이 등을 잡아먹는 현지 주민들의 풍습에 애를 먹고 있다.

 

과일박쥐 등은 에볼라 바이러스의 중간 숙주로 알려져 있어 직접 섭취할 경우 감염 위험이 크다. 그러나 이미 사냥을 통해 식량을 조달하는 식습관을 가지고 있고, 적당한 단백질 섭취 대안이 없는 주민들은 야생동물 사냥을 멈추지 않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지는 4(현지시간) 에볼라 바이러스가 창궐한 기니의 수도 코나크리 등에서는 감염 방지 캠페인을 벌이고 있으며, 남부 기니의 게케두 같은 주요 마을의 시장에서도 야생동물이 사라졌지만 주민들은 여전히 감염 위험에도 불구하고 과일박쥐, 설치류, 영양 등을 섭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게케두 농고하 마을 주민 사아 펠라 레노는 가디언에 이곳 마을의 삶은 쉽지 않다그들(정부당국과 구호단체)이 세대를 걸쳐 내려온 전통을 금지하길 원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야생 고기를 쉽게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이곳에서 가축 사육은 널리 퍼지지 않았다야생동물 섭취 금지는 새로운 삶의 방식이라 비현실적인 것이라고 지적했다.

 

가디언은 시골 지역사회의 에볼라에 대한 부족한 지식과 미신, 국경을 넘는 행위, 부족한 공공보건인프라, 역학적 요인 등이 바이러스를 확산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후안 루브로스 유엔식량농업기구(FAO) 수석수의관(CVO)야생동물이 양질의 영양소를 갖고 있어 중요하다는 것과 작물음식으로는 이를 섭취할 수 없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야생동물을 먹지 말라고 말하지는 않지만, 가축 등 더 안전한 생계수단을 가지게 함으로써 야생동물을 대체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대안을 제시했다. , 염소, 돼지 등 가축 생산이란 개발 어젠다를 제시함으로써 지금의 식습관을 어느 정도 개선할 수 있다는 뜻이다.

 

에볼라 확산 방지를 위한 가장 큰 노력은 위생상태를 개선하는 것이지만, 식습관을 바꾸는 것은 매우 어렵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또한 의학적, 수의학적 접근보단 사회학적, 인구학적 접근과 마을 공동체와의 신뢰, 의사소통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그럼에도 일부 지역은 구호단체들의 공교육 캠페인에 적대적인 입장을 보이다. 심지어 한 주민은 죽어야 한다면 죽겠지만, 전통을 버리는 것은 논외의 문제라며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이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단백질 섭취를 위해 서아프리카 지역 주민들이 주로 사냥하는 것으로 알려진 과일박쥐는 꽃의 꿀이나 꽃가루, 과일을 먹이로 해 과일박쥐란 이름이 붙었다. 에볼라 바이러스를 옮기는 가장 큰 원인으로 추정되고 있다.

1

 

검찰이 몰래카메라를 이용한 방송사의 취재 방식이 적절한지 여부를 수사 중인 것으로 18일 확인됐다.

민사 영역에서 다툼이 잦았던 '몰카' 방송의 법적 분쟁이 형사사건으로 다뤄진 것은 이례적으로 검찰이 어떤 결론을 내릴지 주목된다.

서울중앙지검 형사2(안상돈 부장검사)는 서울의 한 유치원이 MBC 시사고발 프로그램인 < 불만제로 > 제작진을 상대로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한 사건을 수사 중이다.

< 불만제로 > 는 지난 3월 이 유치원에서 유통기한이 10일 경과된 어묵, 녹이 슨 통에 보관 중인 케첩 등을 아이들 먹거리에 사용하고 있다는 내용을 방송했다. < 불만제로 > 는 당시 제작진 1명을 유치원 보조교사로 위장취업시켜 문제의 화면을 몰래 촬영한 뒤 관할 구청에 신고했다. 제작진은 구청 직원과 단속을 겸해 동행취재를 나갔고 이 과정에서 위장 취업과 몰카 촬영 사실이 논란이 됐다.

유치원 측은 "제작진이 인터뷰 거절 의사를 묵살하고 퇴거 요구에 불응한 채 유치원 곳곳을 몰래카메라로 촬영했다"며 지난 4월 제작진을 서울 동작경찰서에 고소했지만 경찰은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하지만 사건을 송치받은 검찰은 '몰카'를 활용한 방송의 적절성을 수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최근 몰래카메라 사용에 관한 해외 취재 사례와 국내외 판례, MBC 내부 취재 가이드라인을 제작진으로부터 제출받았다.

제작진은 "취재 과정에서 윤리강령 및 내부규정을 엄격히 준수해서 촬영했고 공익을 목적으로 취재활동을 벌인 점에 비춰볼 때 문제될 것이 없다"고 말했다. 민변의 박주민 변호사는 "언론기관이 사회비리를 밝히기 위해 몰래카메라를 사용해 취재한 행위는 위법성 조각사유에 해당되기 때문에 업무방해죄로 처벌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 관계자는 "사실관계 파악이 끝나는 대로 법리 검토에 들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2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가 소유한 TV 방송이 총리에게 불리한 판결을 내린 판사의 일상을 몰래 촬영한 뒤 조롱 섞인 논평과 함께 내보내 논란이 일고 있다.

 야당과 현 정권에 비판적인 언론들은 사생활에 대한 중대한 침해이자 사법부 권위를 훼손한 조처라면서 맹비난했다.

 19일 영국의 일간 인디펜던트에 따르면 베를루스코니 총리가 소유한 방송사 메디아셋의 카날 5’ 채널은 최근 밀라노의 시내에서 이발소에 들른 라이몬도 메시아노 판사의 일상을 몰래 찍어 내보냈다.

 카날 5 채널은 메시아노 판사가 시내 이발소에 들러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며 담배를 피우는 모습 등을 담아 마티노 5’라는 프로그램에 방영하면서 메시아노를 기괴하다.” “참을성 없다.” “우스꽝스럽게도 청록색 양말을 신고 있다.” 등의 원색적인 표현을 써가며 조롱했다.

방송이 나가자 판사들이 즉각 발끈하고 나섰다.

 이탈리아 전국판사연합(CSM)은 성명을 통해 이탈리아에서 이처럼 한 개인의 일상이 모욕과 비방을 당한 전례가 없다.”며 이 사건을 사생활침해감시기구에 고발했으며 곧 조사가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일간 라 스탐파의 한 기자도 몰래 뒤를 밟고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면서 공개적으로 조롱한 것과 더불어 최악의 문제는 우리가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고 경고를 했다는 것이라며 이런 일은 영화에서나 보던 것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1 야당인 민주당의 다리오 프란체스치니 대표는 메시아노판사는 자신의 직무르 수행한 죄밖에 없다.”며 모두 청록색 양말을 신어 메시아노 판사에 대한 지지의 뜻을 보여주자고 단문블로그 사이트 트위터를 통해 제안하기도 했다.

 야당과 정부 비판언론 뿐 아니라 총리가 소유한 메디아셋의 한 기자도 모욕적이고 위트 없는 짓이라고 비판했으며,카날 5의 국장을 역임한 저명 언론인 엔리코 멘타나 역시 메디에셋 측에 자제를 촉구했다.

 그러나 메디아셋의 뉴스 부문 책임자인 마우로 크리파 국장은 국가적 명사로 떠오른 인물에 대한 객관적 보도였다.”고 해명하고,총리의 섹스스캔들을 경쟁적으로 보도한 언론들을 가리키며 스파이 저널리즘 기법을 일상적으로 사용해온 자들의 충고는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말했다.

 밀라노 법원의 메시아노 판사는 베를루스코니가 설립하고 그의 맏딸 마리나가 대표로 있는 투자금융회사 피닌페스트가 출판사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불법 주식거래를 했다는 혐의를 인정해 75000만 유로(13500억 원)를 인수전에 참여한 상대 회사에 CIR에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연합뉴스 2009-10-19

 

3

 

[앵커멘트]

안개나 연기, 심지어는 장애물 뒤에 있는 물체를 투시해 촬영할 수 있는 카메라 기술이 개발됐습니다.

옷 속에 숨긴 폭발물이나 권총도 찾아낼 수 있는데 신체부위는 나타나지 않아 인권침해 논란도 피할 수 있습니다.

 

[리포트]

위장막 뒤에 자동차가 숨겨져 있습니다.

적외선과 일반 카메라로는 모습이 보일 리 없습니다.

하지만 소형 레이더처럼 생긴 특수 카메라로 보면 그 형체가 또렷이 잡힙니다.

 

사람의 형체와 움직임도 감지할 수 있습니다.

엄청난 화염이나 연기도 투시해 뒤에 있는 사물을 보여줍니다.

물체 스스로가 발산하는 파장이 긴 밀리밀터파를 감지하기 때문에 인체에도 해가 없습니다. 우리나라가 미국에 이어 세계 2번째로 완성한 것입니다.

 

[인터뷰:정인규, 삼성탈레스 연구개발본부]

"밀리미터파 카메라는 광학기술, 반도체 기술, 그리고 전자파 팩키징 기술이 총체가 되어야만 가능한 기술로서 상당히 어려운 기술입니다"

이 카메라는 옷 속에 숨긴 권총이나 폭발물 등을 실시간으로 검사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이나 영국 공항에 설치된 X-ray 투시기와는 달리 사람의 신체부위는 명확하게 나타내지 않아 인권 침해 논란을 피할 수 있습니다.

 

[인터뷰:김운규, 삼성 탈레스 경영전략팀장]

"성능 구현 위주로만 개발돼 있는데 이 부분을 실제 상용화시킬 수 있도록 무게나 크기를 많이 낮춰서 공항의 안전 검색대라던지, 주요 국가시설에 (보급할 계획입니다)"

또 장기적으로는 군사적인 목적으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연구진은 인간 병사를 대신해 전투를 수행할 견마로봇에 이 시스템을 적용시킬 경우 악천후 속에서도 적진을 정찰하는 임무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YTN 2009.10.19

짧은치마 입은 여성의 다리 촬영 행위 `무죄'

연합뉴스 2008-03-23

 

지하철에서 짧은 치마를 입고 있는 여성의 다리를 휴대전화 카메라로 찍은 행위에 대해 법원이 무죄를 선고해 여성계의 반발이 예상된다.

 

23일 서울중앙지법 등에 따르면 30대 남성 김모씨는 200612월 저녁 지하철을 타고 가다 자신의 앞에 앉아 있는 짧은 치마를 입은 20대 여성을 보고 휴대전화 카메라로 자신이 서 있는 지점에서 여성의 다리를 찍었다.

 

김씨는 치마가 무릎 위로 10~15cm 가량 올라가 있는 이 사진을 보관하고 있다가 다른 사건으로 경찰의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촬영사실이 드러나 기소됐다.

 

김씨에게 적용된 죄명은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카메라 등 이용촬영).

 

이 규정은 다른 사람의 허락을 받지 않고, 카메라 등을 이용해 `성적 욕망이나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사람의 신체'를 촬영하거나 촬영물을 판매전시했을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이나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김씨는 벌금 50만원에 약식 기소됐으나, 사진을 찍은 것만으로 성폭력범으로 몰리게 됐다는 생각에 법원에 정식 재판을 청구했다.

 

1심 재판부는 "김씨가 `성적 욕망이나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타인의 신체'를 촬영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사진에 찍힌 여성의 치마 밑 다리 부위가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타인의 신체에 해당한다며 항소했으나, 서울중앙지법 항소부도 검찰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검찰의 상고로 이 사건은 결국 대법원까지 갔고 대법원 3(주심 안대희 대법관)는 최근 "공소사실에 대한 증명이 없음을 이유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의 판단은 옳다"며 김씨에 대한 무죄를 확정했다.

 

다른 사람의 짧은 치마 아래로 드러난 다리를 촬영했다 해도 성폭력범죄 처벌법에 저촉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에 대해 여성단체 한 관계자는 "허락없이 여성의 다리를 촬영하는 것은 그 자체로 `성적'인 의도가 있으며, 사진을 찍힌 피해 여성으로서는 성적 수치심은 물론 심한 불쾌감을 느낄 수 있는데도 무죄가 선고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미국 애국법·보안산업은 울타리인가, 올가미인가9·11테러 이후 감시권한 확대 국가 안위 떠받치는 양대축으로

보안업체, 정부와 커넥션 급성장 민간이 1급 기밀 접근 권한까지

정보 유출 땐 '메가톤급 부메랑' 빅브라더, 기본권 침해 논란 거듭

 

한국경제 2013.06.14.

 

 

미국 메릴랜드주 포트미드에 있는 미 국가안보국 본부. 국방부 소속으로 테러동향 감시 임무를 담당하는 이 기구는 최근 광범위한 인터넷·통화 정보 수집 사실이 드러나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포트미드=AP=연합뉴스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의 8일자 기사 제목이다. 66일 오전 국가안보국(NSA)이 미국 최대 통신회사 버라이즌 고객의 통화기록을 무차별 수집했다는 충격적 뉴스를 들은 미국인들은 이날 오후 NSA6년 전부터 프리즘이라는 개인정보 수집 프로그램을 운용하며 구글, 페이스북, 야후, 마이크로소프트(MS) 등 대형 인터넷 기업 9곳을 감시해왔다는 폭로를 접했다. 망연자실한 미국인의 눈 앞에 어른거린 것은 영국 작가 조지 오웰의 미래소설 <1984>에 등장하는 감시 권력 빅브라더였을 것이다.

 

이번에 일각을 드러낸 미국의 정보감시체계는 '911 체제'의 산물이다. 2001911테러 이후 미국은 자국은 물론 전세계 차원의 강력한 테러 방지 체제를 구축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기반을 잡고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이어받은 이 체제는 애국법을 정점으로 한 대테러 관련법과 21세기판 군산복합체로 비유되는 정부_보안산업 커넥션을 두 축으로 삼고 있다.

 

애국법, 대테러법의 집약체

 

911테러 직후 미국은 테러 범죄 수사의 편의를 위해 시민의 자유권을 제약할 수 있도록 애국법을 제정했다. 애국법은 국가기반시설을 테러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2002년 제정된 국토안보법과 더불어 가장 포괄적인 대테러 법률로 꼽힌다. 원래 2005년 말 시효가 종료되는 한시법이었지만 일부 조항을 수정하는 조건으로 의회 승인을 받아 영구화했다. 애국법의 내용은 정보기관의 감시·조사 권한 확대 테러 용의자에 대한 포괄적 통신 감시 영장 없는 전자감시 수색영장 사후통지 테러 용의자의 무제한 구금 및 추방 허용을 골자로 한다.

 

형사소송법, 이민법 등 기존 법률도 애국법에 따라 관련 항목을 수정보강했다. NSA가 정보 수집의 근거로 삼은 해외정보감시법(FISA) 조항도 애국법에 맞춰 2008년 신설한 것이다. 이 조항은 정보기관이 1년 동안 외국인 테러 용의자와 내국인 간의 통신을 감시할 수 있도록 했다.

 

미국 정부는 애국법을 "정부가 테러에 맞설 수 있도록 의회가 부여한 가장 중요한 수단"이라고 말한다. 논란 많은 테러와의 전쟁이 대의기관인 의회로부터 법적 정당성을 인정받은 정책이라는 논리다. 오바마 대통령 역시 같은 논리로 이번 파문에 대응하고 있다. 그러나 애국법이 수정헌법 제1(표현의 자유)와 제4(불리한 체포수색 금지)가 보장하는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비판은 끊이지 않는다.

 

자밀 재퍼 미국시민자유연맹 법무담당 부국장은 대테러 관련법의 위헌성이 의심돼도 법적 대응이 쉽지 않다고 했다. 그는 2008FISA가 개정됐을 때 위헌법률이라며 대법원에 제소했던 경험을 예로 들며 당시 법원이 "제소자들은 정보기관이 자신들의 통화나 이메일 내용을 수집했다는 사실부터 입증해야 한다"며 소송을 기각했다고 지적했다. 마크 우달 민주당 상원의원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애국법에 대한 논의를 재개해 NSA가 수집하는 정보에 제한을 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심화하는 정부_보안산업 커넥션

 

미국 정부의 감시체제를 폭로한 에드워드 스노든은 컨설팅업체 부즈앨런해밀턴 소속이었다. 직원 24,500명을 두고 IT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 회사의 주고객은 NSA를 비롯한 미국 정보기관이다. 지난해 매출액 58억달러(65,795억원) 13억달러(22%)가 정보기관 수주 사업에서 나왔고 1월에는 국방부에 5년간 정보분석 서비스를 제공하는 56억달러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다. 올해 1분기 수익의 99%가 미국 정부와 맺은 5,700여건의 계약에서 창출됐다고 밝히기도 했다. 스노든의 연봉은 122,000달러(13,840만원).

 

이처럼 미국 정보기관과 계약한 외주업체는 1,931곳에 달한다. 911테러 이후 정보기관들이 방대한 정보수집을 위해 민간 전문업체들과 계약하면서 보안정보 산업이 급성장했다. 중앙정보국(CIA) 등 정보기관 인력들이 대거 민간기업에 유입됐다. 워싱턴포스트(WP)는 미국 정부가 정보 활동에 800억달러를 쏟아붓고 관련 업무 종사자가 854,000명에 이른다고 전했다.

 

일부 보안업체들은 정보기관과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부즈앨런해밀턴이 대표적 사례로, 최고위 정보 당국자인 제임스 클래퍼 국가정보국(DNI) 국장이 이 회사 임원 출신이고 전임 국장 존 매코넬은 1996년 이 회사로 이직해 부의장으로 일하고 있다. 이곳 직원의 75% 이상이 정부 보안업무에 종사하고 그 중 절반은 1급 기밀에 접근할 권한이 있다. WP는 미국 내 1급 기밀 처리 인가를 받은 854,000여명 중 31%(265,000)가 민간회사 직원이라고 추산한다. 캘리포니아주에 본사를 둔 보안업체 SAIC 역시 '서부의 NSA'(동부 메릴랜드주에 본부를 둔 NSA에 빗댄 표현)로 불릴 만큼 정보기관과 깊은 관계에 있다. 시민단체들은 회전문 인사, 수의계약 등 정부와 보안업체의 유착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민간회사들이 사익을 위해 국가 기밀을 활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정보업무 외주는 늘어나는데 이를 감시할 정부 조직은 간소화하고 있다. 소노든의 행동에 대한 평가는 차치하고, 그가 부즈앨런해밀턴 계약직으로 입사한 지 3개월 만에 1급 기밀 문건을 손에 넣은 것은 정부와 업체가 기밀 관리에 소홀하다는 증거라는 지적이 나온다.

 

 

, 80개국서 비밀 도·감청 조직 운영동맹관계 휘청

한겨레신문 2013.10.27

 

 

 

미국의 국외 불법 도·감청 스캔들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다. 이번엔 미국 정보당국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휴대전화를 10년 넘게 도청·감청했다는 폭로가 나왔다. 특히 미국이 독일 등 세계 80여개국에서 불법 도·감청 조직을 운영해온 기록이 유출돼, 동맹국과 정보 공유가 관건인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에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26일 미국 정보당국이 메르켈 총리의 휴대전화를 10년 넘게 도·감청했다고 보도했다. 전직 미 국가안보국(NSA) 계약직원 에드워드 스노든이 제공한 기밀문서가 폭로의 바탕이 됐다. 이 자료를 보면, 메르켈 총리의 전화번호는 2002년 당시 야당이던 기독민주당(CDU) 당수 시절부터 미 국가안보국의 특별수집서비스목록에 들어 있었다. 메르켈 총리의 전화번호는 지난 6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베를린을 방문하기 몇 주 전까지 이 목록에 올라 있었다.

독일 일간 <빌트>의 일요판은 27일 오바마 대통령이 3년 전부터 이를 알고 있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국가안보국 고위 관계자의 말을 따서, 키스 알렉산더 국가안보국장이 2010년 메르켈 총리에 대한 도·감청 내용을 오바마 대통령에게 개인적으로 보고했다고 전했다. 오바마가 이를 중단시키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자세한 보고를 원해 감시 범위를 확대했다는 것이다. 사실로 확인되면, 자신은 몰랐다고 해명한 오바마 대통령은 더욱 궁지에 몰릴 것으로 보인다.

메르켈 총리에 대한 도·감청 활동은 베를린의 미국 대사관에 차려진 불법 스파이 지부를 통해 이뤄졌다. 이곳에서 국가안보국과 중앙정보국(CIA) 직원들이 첨단장비로 독일 정부청사를 도·감청했다. 미국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도 비슷한 조직을 운영했고, 유럽 19개국 등 세계 80여개국에 국가안보국과 중앙정보국의 도·감청 시설이 있었다고 <슈피겔>이 전했다.

지난 2008년 오바마 당시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가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문에서 연설했을 때, 수만명의 독일인들은 전례없는 환호로 그를 맞았다. 그러나 <시엔엔>(CNN) 방송은 5년이 흐른 지금, 독일 등 유럽이 오바마에 정나미가 떨어졌다는 말로 싸늘해진 분위기를 전했다.

독일은 이번주 정보기관 최고위 당국자를 미국에 파견해 해명과 조사를 요구할 예정이다. 독일은 또다른 피해국인 브라질과 함께 미국의 스파이 활동을 저지할 유엔 결의안도 앞장서 추진하고 있다. 결의안 초안 작성 회의에는 모두 21개국이 참가해, 미국의 정보수집 활동에 대한 국제사회의 대응이 본격화할 것임을 예고했다. <시엔엔> 방송은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의 말에 빗대, 동맹국의 반발을 초래한 이번 사태가 테러와의 전쟁에 걸림돌이 되리라 전망했다. 올랑드 대통령은 정보활동의 주요 목표는 테러 방지와 안보 유지지만, 이를 위해 자신의 개인정보가 활용되는 것은 누구라도 두려워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 시민들도 미 정보당국의 불법 활동에 대한 저항의 전열을 가다듬었다. 26일 낮 수도 워싱턴의 내셔널 몰에서는 1000여명의 시위대가 미국의 정보 수집 활동 제한을 촉구했다. 시위대는 이번 사태를 수정헌법 위반과 민주주의 역행의 문제로 규정했다. 애국법 철폐도 요구했다. 일부 시위대는 미 정부가 배신자로 낙인찍은 스노든을 지지하는 손팻말을 흔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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