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0개국서 비밀 도·감청 조직 운영동맹관계 휘청

한겨레신문 2013.10.27

 

 

 

미국의 국외 불법 도·감청 스캔들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다. 이번엔 미국 정보당국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휴대전화를 10년 넘게 도청·감청했다는 폭로가 나왔다. 특히 미국이 독일 등 세계 80여개국에서 불법 도·감청 조직을 운영해온 기록이 유출돼, 동맹국과 정보 공유가 관건인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에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26일 미국 정보당국이 메르켈 총리의 휴대전화를 10년 넘게 도·감청했다고 보도했다. 전직 미 국가안보국(NSA) 계약직원 에드워드 스노든이 제공한 기밀문서가 폭로의 바탕이 됐다. 이 자료를 보면, 메르켈 총리의 전화번호는 2002년 당시 야당이던 기독민주당(CDU) 당수 시절부터 미 국가안보국의 특별수집서비스목록에 들어 있었다. 메르켈 총리의 전화번호는 지난 6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베를린을 방문하기 몇 주 전까지 이 목록에 올라 있었다.

독일 일간 <빌트>의 일요판은 27일 오바마 대통령이 3년 전부터 이를 알고 있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국가안보국 고위 관계자의 말을 따서, 키스 알렉산더 국가안보국장이 2010년 메르켈 총리에 대한 도·감청 내용을 오바마 대통령에게 개인적으로 보고했다고 전했다. 오바마가 이를 중단시키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자세한 보고를 원해 감시 범위를 확대했다는 것이다. 사실로 확인되면, 자신은 몰랐다고 해명한 오바마 대통령은 더욱 궁지에 몰릴 것으로 보인다.

메르켈 총리에 대한 도·감청 활동은 베를린의 미국 대사관에 차려진 불법 스파이 지부를 통해 이뤄졌다. 이곳에서 국가안보국과 중앙정보국(CIA) 직원들이 첨단장비로 독일 정부청사를 도·감청했다. 미국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도 비슷한 조직을 운영했고, 유럽 19개국 등 세계 80여개국에 국가안보국과 중앙정보국의 도·감청 시설이 있었다고 <슈피겔>이 전했다.

지난 2008년 오바마 당시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가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문에서 연설했을 때, 수만명의 독일인들은 전례없는 환호로 그를 맞았다. 그러나 <시엔엔>(CNN) 방송은 5년이 흐른 지금, 독일 등 유럽이 오바마에 정나미가 떨어졌다는 말로 싸늘해진 분위기를 전했다.

독일은 이번주 정보기관 최고위 당국자를 미국에 파견해 해명과 조사를 요구할 예정이다. 독일은 또다른 피해국인 브라질과 함께 미국의 스파이 활동을 저지할 유엔 결의안도 앞장서 추진하고 있다. 결의안 초안 작성 회의에는 모두 21개국이 참가해, 미국의 정보수집 활동에 대한 국제사회의 대응이 본격화할 것임을 예고했다. <시엔엔> 방송은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의 말에 빗대, 동맹국의 반발을 초래한 이번 사태가 테러와의 전쟁에 걸림돌이 되리라 전망했다. 올랑드 대통령은 정보활동의 주요 목표는 테러 방지와 안보 유지지만, 이를 위해 자신의 개인정보가 활용되는 것은 누구라도 두려워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 시민들도 미 정보당국의 불법 활동에 대한 저항의 전열을 가다듬었다. 26일 낮 수도 워싱턴의 내셔널 몰에서는 1000여명의 시위대가 미국의 정보 수집 활동 제한을 촉구했다. 시위대는 이번 사태를 수정헌법 위반과 민주주의 역행의 문제로 규정했다. 애국법 철폐도 요구했다. 일부 시위대는 미 정부가 배신자로 낙인찍은 스노든을 지지하는 손팻말을 흔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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