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모자들' 김홍선 감독, "장기매매의 윤리적 문제가 화두"

 

이데일리 2012.09.12

영화가 아주 세다는 말을 하더라고요. 어떤 여성 관객은 토한 적도 있다고요.”

 

직설적인 화법과 날 것 같은 영상으로 주목받는 감독이 있다. 영화 공모자들의 김홍선 감독이 그 주인공이다. 김 감독은 TV 드라마 출신이 영화감독으로 성공하기 어렵다는 속설을 딛고 흥행몰이에 나섰다.

 

드라마에서 하지 못했던, 할 수 없었던 작업을 마음껏 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빠듯한 예산 때문에 원하는 대로 하지는 못했죠. 그래도 CG 등 후반작업을 통해 하나씩 만들어가는 게 즐거웠어요.”

 

공모자들은 장기밀매업자 출신의 영규(임창정)와 아내를 납치당한 상호(최다니엘) 그리고 이식할 장기가 급한 유리(조윤희)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공모자들에 참여한 스태프는, 이 영화가 완성되는 데 김홍선 감독의 역할이 가장 컸다고 입을 모은다. 무엇보다 빠듯한 제작 일정과 넉넉지 않은 예산 때문에 애를 먹었다. 우연히 발견한 영화 시나리오는 그의 생각과 고민이 담긴 메모가 가득 적혀 있었다.

 

어떻게 마무리 지을 수 있을까 촬영 내내 고민했죠. 순간이 기적 같아요. 이렇게 인터뷰를 하는하는 것은 영화 흥행의 기쁨을 꿈꿀 시간도 없었어요. 한 가지 분명했던 건, 이 영화는 무조건 된다는 믿음이었죠.”

 

김홍선 감독의 원래 꿈은 다큐멘터리 PD였다. 어릴 적 총에 맞아 죽으면서도 카메라 셔터를 누른 한 종군기자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고 생긴 꿈이었다. 김 감독은 뉴욕필름아카데미에서 영화를 전공한 후 지난 2006년부터 드라마 ‘90일 사랑할 시간’ ‘스타일’ ‘대물등의 드라마 조감독으로 일했다.

공모자들의 김홍선 감독은 극장 상영판에 비해 초기 편집판은 5배나 10배 정도로 더 직설적이고 자극적이었다고 말했다.(사진=한대욱 기자)

한 르포 기사를 보고 시나리오를 쓰게 됏어요. 한 신혼부부가 장기밀매조직에 납치됐다는 이야기였죠. 후에 윤리학자, 변호사, 의사 등이 장기매매의 활성화에 대한 토론을 하는 것을 보고 윤리적인 문제를 다뤄보고 싶었어요.”

 

공모자들은 영화의 소재만큼이나 화면도 묵직하다. 성적 비하, 욕설 등 대사뿐 아니라 가공하지 않은 현실과 같은 액션 장면도 눈에 띈다. 영화 촬영을 끝내고 제작진의 오랜 설득을 받아들인 후에야 잔인하고 야한 내용을 담은 10여 분 분량의 화면을 삭제했다.

 

김홍선 감독의 실제 삶은 영화와 딴판이다.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하고, 말투는 유쾌하다. 스스로 생선회 같은 리얼한 화면을 선호할 뿐이라고 미소를 지었다. 김홍선 감독은 영화의 매력에 빠졌다면서 다음 작품으로 성을 소재로 한 스릴러를 기획 중이라고 귀띔했다.

장기이식 대상자선정기준 일반기준

(국립장기이식관리센터 http://www.konos.go.kr/menu2/sub_06_02.asp)

 

1. 장기등기증자와 이식대상자의 혈액형은 동일하거나 장기등기증자의 혈액형이 이식대상자에게 수혈가능한 혈액형이어야 한다. 다만, 각막·골수 등 수혈가능 여부와 관계없이 의학적으로 이식수술이 가능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2. 장기등기증자가 살아있는 자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다음 각목의 순위에 따라 이식대상자를 선정하여야 한다.

 

. 1순위 : 당해 뇌사자의 배우자, 직계존·비속, 형제자매 또는 4촌 이내의 친족 중 장기등이식대기자로 등록된 자

 

. 2순위 : 당해 뇌사자를 관리하고 있는 법 제16조의2의 규정에 의한 뇌사판정대상자관리전문기관에 등록된 신장 이식대상자 1

 

. 3순위 : 다음 항목의 권역구분에 따라 장기등기증자와 동일권역안에 있는 장기등이식대기자. 다만, 장기별 기준에서 권역구분없이 이식대상자를 선정할 수 있는 요건을 별도로 정한 경우 또는 장기별 기준 제3호의 경우에는 권역구분없이 전국의 장기등이식대기자중에서 이식대상자를 선정하여야 한다.

 

(1) 1권역 : 서울특별시·인천광역시·경기도·강원도 및 제주도

(2) 2권역 : 대전광역시·광주광역시·충청북도·충청남도·전라북도 및 전라남도

(3) 3권역 : 부산광역시·대구광역시·울산광역시·경상북도 및 경상남도

 

. 4순위 : 전국의 장기등이식대기자

 

3. 장기별 기준에 따라 이식대상자를 선정한 결과 동일 순위에 속하는 자가 2인 이상인 경우에는 다음의 각목의 순위에 따라 이식대상자를 선정하여야 한다.

 

. 1순위 : 과거에 장기등을 기증한 사실이 있는 자 또는 배우자, 직계존·비속, 형제자매 또는 4촌 이내의 친족중에 뇌사자장기기증을 한 사실이 있는 자

 

. 2순위 : 나이가 어린 자

 

. 3순위 : 장기등이식대기자로 등록한 기간이 오래된 자

 

4. 간장·심장 또는 폐의 이식대상자로 이미 선정된 자가 신장 또는 췌장을 동시에 이식받을 수 있는 대상자로 되는 경우에 있어서 다음 각목의 요건을 모두 충족하는 때에는 신장 또는 췌장의 이식대상자(이하 이 호에서 "다장기이식대상자"라 한다)로 우선 선정하되, 이에 해당하는 자가 2인 이상인 경우에는 장기별 기준 제1호가목에 해당하는 자, 3호의 규정에 해당하는 자의 순위로 선정하여야 한다. 다만, 다장기이식대상자는 장기별 기준 제1호가목에 해당되지 아니하나 신장 또는 췌장만을 이식받고자 하는 장기등이식대기자중에서 장기별 기준 제1호가목에 해당하는 자가 있는 경우에는 이에 해당하는 자를 우선 선정하여야 한다.

 

. 장기등기증자와 이식대상자의 사람백혈구항원 교차검사 (Human Leukocyte Antigen Cross Match) 결과가 음성일 것

. 장기등기증자와 혈액형이 동일할 것

 

5. 간장의 이식대상자로 이미 선정된 자가 심장 또는 폐를 동시에 이식받을 수 있는 대상자로 되거나, 심장 또는 폐의 이식대상자로 이미 선정된 자가 간장을 동시에 이식받을 수 있는 대상자로 되는 경우에 있어서 다음 각목의 요건을 충족하는 때에는 심장이나 폐 또는 간장의 이식대상자로 우선 선정하되, 이에 해당하는 자가 2인 이상인 경우에는 제3호의 규정에 따라 선정하여야 한다.

 

. 해당 장기별로 장기별 기준 제2호가목 또는 제3호가목의 요건에 적합할 것

. 동시에 이식받아야 하는 심장이나 폐 또는 간장을 기준으로 측정한 제18조제2항의 규정에 의한 의학적 응급도(이하 "응급도라 한다)가 심장이나 폐 또는 간장중 1개만을 이식받고자 하는 장기등이식대기자보다 높거나 같을 것

 

[취재수첩] 법조일원화 10

 

 

 

성경(마태복음 20)에 등장하는 포도원 주인은 아침에 일하러 온 일꾼과 오후에 온 일꾼들에게 품삯으로 공평하게 한 데나리온씩을 주고 있다.

 

아침에 일찍 온 사람에게는 많이 주고, 오후 늦게 온 사람에게는 적게 주는 것이 세상 이치에 맞을 것 같은데도 포도원 주인은 먼저 오거나 나중에 온 사람을 구별하지 않고 똑같은 일당을 지급한 것이다.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되리라라는 문구로 유명한 이 성경구절을 볼 때마다 욕심 부른 범인(凡人)의 상식은 여지없이 깨져버리고 만다.

 

재야 출신 법관이법관인사의 꽃이라는 고등법원 부장판사로 발령받기가하늘에 별따기 보다 어렵다는 내용의 기사(22일자 1)가 보도되자 일선 법관들의 반응은 크게 엇갈렸다.

 

어떤 판사들은 법조일원화를 위한의미있는 기사라고 평가(?)하면서도 묵묵히 일해 온 판사들이 재야 출신 법관들이 재력에 이어 명예까지 함께 지니려고 하는 것을 보면서 느껴야 하는 허탈감은 어떻게 달래 줘야 하는가 하는 문제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재야 출신 법관들이 전체 법관들 가운데 매우 적은 숫자라는 점을 감안하면 대다수 법관들의 생각도 이와 다르지 않으리라 짐작된다.

 

하지만 이용훈 대법원장 본인도 취임 이후 줄곧 국민을 섬기는 법원을 만들고자 한 계기가 변호사시절 경험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고 했듯이 재야 경험을 반드시재판공백기로만 볼 것은 아니지 않은가. 올 해로 대법원이 법조일원화를 추진한지 꼭 10년이 된다. 경력법관제도를 염두에 두고 만든 고법부장 승진심사 기준을 재야출신 법관들에게도 똑같이 적용한다는 것은 너무 야박할 뿐만 아니라 법조일원화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빗나가는 법조일원화] “재판의 질 향상취지 무색

경향신문 20070316

 

경험이 풍부한 변호사를 판사로 임용해 재판의 질을 높인다는 취지로 도입된 법조일원화제도가 오히려 일부 지역에서 사법부 신뢰를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경력법관이 옛 동료들이 맡은 사건을 처리할 경우 공정성 시비도덕적 해이를 차단할 수 있는 장치가 시급히 보완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변호사를 하다가 법복을 입게 된 판사 중 일부는 재판의 공정성에 문제가 될 수 있는 동료 변호사의 재판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는 변호사들이 많은 지역에서 판사로 생활하기를 고집했다. 한 지역에서 변호사·판사·변호사로 번갈아 옷을 갈아입어 사실상 판사직이 몸값 불리는 수단이 되어버린 경우도 있었다.

 

이 같은 사실은 경향신문이 151998년부터 임용된 변호사 출신 판사 127명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확인됐다. 법조일원화 시행 초기부터 제기돼 온 공정성 시비 우려가 현실로 나타난 셈이다.

 

동료 변호사를 법정에서=지난해 4월 부산지법의 판사는 배당된 소장을 보다가 깜짝 놀랐다. 소장 변호인란에 판사로 임용되기 전 몸담았던 법무법인 대표 변호사의 이름이 선명하게 찍혀있었던 것이다. 판사는 난감했다. 그러나 재판이 많은데 이런 이유로 기피신청을 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재판을 감행했다. 이후 1년여 동안 9차례나 법무법인이 맡은 사건의 재판을 했다. 결과는 법무법인의 63. 판사는 재판은 공정했고 항의를 받은 적이 없다면서도 상대측 변호사가 나와 한때 동료였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소송 당사자들이) 재판을 어떻게 봐줄지 솔직히 걱정이 된다고 털어놓았다.

 

판사·변호인이 한때 동료였다는 점을 들어 실제로 재판의 공정성에 문제를 제기하는 일도 벌어졌다. ‘석궁사건의 김명호 전 교수가 대표적인 사례다. 성균관대의 입시문제 오류를 지적한 뒤 재임용에서 탈락한 김전교수가 낸 소송에서 성대측 변호인은 담당재판부의 부장판사가 변호사 시절 몸담았던 법무법인이었다. 이를 알게된 김전교수는 패소후 판결을 비판하고 나섰다. 사실 부장판사가 법무법인의 소송을 맡은 것이 그때가 처음은 아니었다. 판사는 2004년부터 약 2년여 간 7차례 법무법인의 소송을 맡았다. 부장판사는 “(나는)분사무소에 있었기 때문에 사실상 동료변호사들은 아니었다같은 법무법인이 수임한 재판이라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법원 내부에서조차 이점은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법원행정처의 한 관계자는 재판부가 당연히 기피신청을 했어야 할 사안이라고 비판했다. 또 다른 변호사 출신 판사들도 같은 법무법인 소속은 아니지만 한때 함께 일했던 변호사를 법정에서 봤을 때 난감했다차라리 공식지침을 마련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판사는 몸값 올리는정거장?=광주에서 약 15년간 변호사로 활동한 . 꽤 유명한 지역인사인 그는 법조경험과 능력을 인정받아 2000년 광주지법에서 법복을 입게 됐다. 그러나 그가 법원에 머문 기간은 단 1. 씨는 다시 같은 지역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냈다. ‘··변 현상의 대표적인 경우다.

 

변호사 측은 개인사정 때문에 그만뒀을 뿐 특별한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다른 변호사들은 판사로 짧게라도 재직하면 적어도 준 전관예우정도는 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고의는 아니었을지라도 사실상 판사 재직이 몸값 올리는 수단이 돼버린 셈이다. 이처럼 같은 지역에서 변호사·판사·변호사로 연달아 옷을 갈아입은 경우는 이뿐만이 아니다. 1979년부터 제주에서 활동해온 변호사는 98년부터 3년간 제주에서 판사생활을 한 뒤, 다시 제주도에 변호사 사무실을 냈다.

 

거꾸로 판사로 재직했던 지역에서 변호사 개업을 했다가, 다시 지역 판사로 돌아가는 경우도 있다. 98년부터 광주에서 판사로 일했던 씨는 2001년 광주에서 변호사로 활동한 뒤, 2004년 다시 광주지방법원의 판사가 됐다. 판사 경력으로 전관예우의 혜택도 받고, 변호사 경력으로 법조일원화의 혜택도 받은 셈이다.

 

변호사 시절 자신의 텃밭에서 판사생활을 하고 있는 이들에 대한 비판도 나오고 있다. 변호사 시절 쌓은 지역인과의 친분관계가 재판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그동안 이 문제에 대해 변호사 출신 판사들은 주로 판사들 스스로 주의해야 할 문제라고 말해왔지만, 속내는 달랐다.

 

충청지역에서 판사생활을 하고 있는 . 그는 인근 지역에서 15년간 변호사 생활을 해온 토박이이다. 당연히 그 지역엔 등산과 골프를 함께 즐기던 변호사들이 많다. 판사는 변호사 시절 친하게 지냈던 이들이 변호인으로 나설 경우, (그들에게) 1%의 이득도 없다면 그건 거짓말일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상황이 이런데도, 법원 측에서는 특별한 감찰활동조차 벌이지 않고 있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한상희 소장은 변호사 출신 판사들은 많아지고 있는데도, 그에 걸맞은 윤리지침, 감찰제도 등이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변호사 출신 판사들의 도덕적 해이를 막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게 시급하다고 말했다.

 

법조일원화

 

사법연수원을 졸업한 뒤 변호사 자격을 가지고 검사나 변호사 등 5년 이상의 법조 경력을 쌓은 사람 중에서 법관을 임용하는 방식이다. 1997년부터 비상시적으로 시행되다 사법개혁위원회의 건의에 따라 지난해부터 정기적인 법조일원화 계획이 세워져 시행됐다. 2006년 경력 법관은 전체 신임법관의 10% 정도였으나 2012년에는 50%로 늘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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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나가는 법조일원화] 법원도 고민중회피만 하자니 업무 차질

20070316

 

 

경력법관이 한때 변호사로 일하던 법무법인의 사건을 맡을 경우 공정성 시비를 어떻게 피해갈지를 놓고 법원도 깊은 고민에 빠져있다.

 

현재 형사소송법상 회피사유에는 이런 문제가 반영돼 있지 않다. 다만 법관이 불공정한 재판을 할 염려가 있을 때 회피할 수 있다는 포괄적 규정만 있을 뿐이다.

 

대법원 변현철 공보관은 사건을 재배당하는 방법은 법원장 직권으로도 가능하지만 변호사 경력이 재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오해를 없애기 위해 지침이나 예규를 만드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한계가 있을 수 있다. 향후 신임판사 중 절반이 경력법관으로 채워지고 사건수임 건수가 많은 중대형 로펌 출신 법관들이 법원이 들어오는 상황이 되면 관련사건을 피하기도 어렵고 사건을 무조건 회피하다간 자칫 재판업무에 차질을 빚을 수 있기 때문이다. 보다 정교하고 장기적 대책 마련이 필요한 대목이다.

 

법원은 경력판사로 법원에 들어왔다가 다시 변호사로 개업하는 경우에 대해서는 법조일원화 취지에 맞지 않아 바람직하지 않지만 막을 도리가 없다는 입장이다. 법관으로 정년까지 일하는 법관종신제가 정착되거나 법관에 대한 대우가 변호사에 비해 대폭 올라가지 않는 한 근본적 해결이 어렵다는 것이다.

 

다양하고 우수한 재야 경력을 지닌 사람을 판사로 임용하자는 것이 제도의 취지이지만 정작 법원이 원하는 우수한 인재들은 법원을 그리 희망하지 않는다는 문제도 있다.

 

재야와 재조의 대우가 큰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변공보관은 판사로 일하다 잠시 개업한 뒤 다시 판사로 들어오는 경우에 대해 문제 제기할 수 있지만 법원 입장에서는 판사 출신 경력을 우선하지 않을 수 없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법조 일원화 찬성 입장

 

- 나이에 걸맞는 연륜과 노하우의 검증이 신참에 대한 검증보다 낫다. 국민들은 나이 어리고 세상 물정 모르는 판사보다 다양한 삶의 모습을 이해하는 경륜 있는 판사들을 원한다. 경험이 풍부한 검사나 변호사는 소송당사자로서 법정에서 판사를 지켜봤기 때문에, 판사가 된다면 법원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다. 사법연수원을 갓 졸업하고 법관복을 입은 판사보다 재판 경험이 풍부한 변호사나 검사가 더 나은 재판을 할 수 있다.

 

- 우리 사회가 이제 안정기에 어느 정도 들었으니, 이제 머리좋은 판사보다는 경험많은 판사가 어느 정도 필요할 때도 되었다. 변호사는 빨리 만들되, 판사는 좀 천천히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전관변호사때문에 변호사 시장 더 이상 망가지는 것도 옳지 않다. 한번 임용된 법관의 근무지 변호사 개업은 반드시 막아야 할 것이다. 더 내려갈 곳도 없이 망가져 버린 국내 형사송무시장은 전적으로 특수효과를 원하는 고객들과 결탁한 전관변호사들의 책임이 크다. 이 점 본인들도 전혀 부인하지 않는다. 전관 변호사의 폐해를 자정하기에는 법원과 검찰, 변협은 아무짝에 쓸모가 없다. 로스쿨의 도입으로 정체되어 있는 법조의 시스템을 바꾸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며, 이는 스스로 자정능력을 상실한 법원, 검찰, 변협의 책임이다. 법조일원화는 한통속으로 해먹자는 뜻이 아니라, 단지 법원이 독자적인 기준을 강화하여, 변호사나 검사 중에서 법관을 뽑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지금도 숫자는 작지만 그렇게 하고 있다. 그 기준을 좀더 계량화하여 전부 그런 식으로 뽑아야 할 것이다.

 

- 법조일원화를 폐지하는 것 보다는 제도를 보완하는 방향으로 가야한다. 지금까지는 사법개혁이 법조인들의 일로만 여겨져왔다. 국민은 대상이자 객체였다. 모든 권력은 국민들로부터 나오는 게 민주주의 기본 원리다. 사법개혁은 객체였던 국민이 주체로 나서는 것이다. 또 그동안 소수 법조인이 독점했던 사법작용을 투명화해서 통제하자는 것이다.

 

- 변호사 출신 판사 문제는 그만큼 법원에서 민감한 문제인데, 법원행정처가 최근 같은 테마로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내년부터 시행되는 로스쿨 제도에서 판사를 어떻게 뽑을지를 아직 결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첫 졸업생이 2012년에 배출되니 4년이나 남았는데 뭐 그리 급하냐고 하겠지만 그리 간단하지가 않다. 판사를 로스쿨 졸업자 중에서만 뽑을 것인지, 아니면 변호사를 몇 년간 경험하게 한 뒤 뽑을지, 그도 저도 아닌 절충을 한다면 새내기 로스쿨 졸업자와 변호사 출신의 비율을 어떻게 할지가 핵심이다. 이 문제는 사법고시를 언제 폐지할지 등과도 연결되기 때문에 생각보다 시급하다. 변호사 출신을 많이 뽑을 경우 나중에 고등 부장 승진에서 이들의 승진 비율은 어떻게 할지도 드러내 놓지 못하는 법원의 고민 중 하나다. 대법원과 법원행정처는 로스쿨 졸업자들을 반() 정도 뽑고, 재야 경력 변호사 중에서 나머지를 뽑는 절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변호사 출신의 판사 선발은 형식적인 선에서 이뤄졌다. 작년 18명이 최대였다. 그러니 만일 경력 변호사를 한 해 충원 인원의 절반인 70여 명이나 뽑는다면 그것은 혁명적인 변화라 할 수 있다. 사법고시에 합격했다고 판사를 신뢰하던 시대는 지났다. 국민들은 나이 어리고 세상 물정 모르는 판사보다 다양한 삶의 모습을 이해하는 경륜 있는 판사들을 원한다. 로스쿨 제도는 변호사 대량 배출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경험을 가진 변호사들이 법원과 검찰에 대거 진입하고, 사법의 중추(中樞)를 담당하게 될 때에야 비로소 성공하는 것이다. 평생 판사가 위주인 지금의 사법부는 다양성 부족이라는 점이 늘 약점으로 꼽혀 왔다. 그런 점에서 로스쿨 제도는 사법부에도 기회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법원은 판사들 사이의 갈등 같은 당장의 작은 문제에 얽매이지 말고, 사법부 내 판사 구성을 어떻게 다양화할 것인지, 20년 후 사법부를 어떤 모습으로 만들지를 잘 설계해야 할 것이다.

 

법조 일원화 반대 입장

 

- 한국의 고도 성장기에 소년판검사들이 젊은 머리로 우수한 외국 제도을 잘 녹여서 사용하였고, 생경한 경제현실을 법치와 맞추느라 밤도 많이 세었을 것이다.

 

- 세속화된 노인들은 비리에 약하다. 법조 일원화는 재야 법조의 숙원이고 곧 출범하는 사법개혁위원회의 핵심 의제이긴 하나 변호사 업계에 사건유치 브로커 고용 등 비리가 흔한 반면 세금 제대로 내는 변호사가 드문 변호사 업계 풍조 개선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비리 변호사출신이 판사가 되어 누굴 치죄한다는 것은 넌센스이다. 법조삼륜의 일원인 검찰이 법조비리 수사를 하자면 인간적으로 어려움이 많겠지만 전체 변호사의 명예를 위해서도 비리 변호사를 솎아내는 일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기야 상습 범죄인까지 고객으로 둬야 하는 변호사에게 법관에게 요구되는 것과 같은 고도의 윤리를 기대하기는 애초에 무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비리 변호사를 법조인이라고 부를 수는 없는 노릇이다.

 

- 전관예우를 받으며 변호사로 떼돈을 벌고 판/검사로 복귀하는 법관임용제도의 문제점과 지역법관의 토착세력과의 유착관계 등 지역법관제도의 부작용이 있다. 관할지역에서 판검사로 재직하다가 최종 근무지에서 변호사로 개업해 구속 및 보석사건을 싹쓸이 하는가 하면, 전관예우의 재미를 톡톡히 보며 떼돈을 번 후 다시 판검사로 복귀한 법조인의 예를 볼 때, 관할지역에서 수년간 근무했거나 퇴직한 판검사들이 같은 지역에서 변호사로 개업할 경우, 2년간 관할지역의 형사사건(특히 구속사건 및 보석사건) 수임을 금지하는 등의 강력한 조치가 필요하다. 지역법관제도가 확대되면서 일부 지역의 변호사들 사이에는 변호의 성공을 위해 판사보다는 지역 토호세력들을 찾아다니면 효과가 있다는 이야기가 나돌고 있을 정도이며, 지역법관과 토착세력간의 유착문제가 일어나는 것은 부패사범, 선거사범, 영장 및 보석청구사건 등 항소 및 합의부 사건인데 이런 주요사건을 다루는 재판부에 지역법관을 배치하고 있는 법원은 토착세력과의 유착 부작용이 우려된다. 지역법관제의 폐해를 없애려면 부패, 선거, 영장, 보석사건 등 주요사건 담당재판부에 가급적 지역법관을 배치해서는 안 되고, 부장판사들은 지역법관 임명을 배제해야 하며, 현재 10년으로 돼 있는 지역법관 임기를 점차 단축해 궁극적으로는 지역법관제를 폐지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하기에 법조일원화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다.

 

- 최근 법원 인사에서는 변호사 경력을 가진 판사가 고등법원 부장판사로 승진했다. 다른 한 명의 변호사 출신 판사도 대상에 올랐으나 최종 단계에서 탈락했다. 사법고시 합격 후 판사 생활만 한 '직업 판사'들이 주축인 우리 사법제도 아래서 변호사 출신 판사가 '고등 부장' 승진 대상에 2명이나 오르고 한 명이 승진한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고등 부장은 고등법원의 판사 3명으로 이뤄진 합의부의 재판장을 맡는 부장판사를 일컫는 말로, 행정부로 치면 차관급이고 검찰로 보면 검사장에 해당하는 위치다. 지방법원 부장과 법원장도 있지만 직급이 아닌 보직이어서, 고등 부장은 대법관이 아닌 판사가 단 한 번 승진하는 자리다. 고등부장 승진제는 판사들의 관료화를 부추기고 재판의 독립을 침해한다는 반대와, 합리적인 경쟁을 유도하는 유일한 장치라는 찬성의 양론(兩論)이 있어 왔다. 그런 자리이니 변호사 출신 판사의 첫 승진은 여러 가지로 화제가 됐다. 법원이 법조 일원화(一元化) 차원에서 한 해 140~150명 충원하는 판사 중에 10여 명씩을 변호사 출신에서 뽑아 왔는데, 이들이 어느덧 법원 내에서 하나의 세력이 돼 '평생 판사'들과 인사 경쟁까지 벌일 정도가 된 것이다. 변호사 출신 판사들이 더 열심히 일하도록 대법원이 배려한 것이라는 평이 나왔다. 법원 내부에서도 이런 대세를 수긍하는 판사들이 많았지만, 사법고시 합격 후 곧바로 임관한 일부 판사들은 "변호사 활동으로 경제적 여유가 있는 판사들과 같은 조건에서 경쟁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반발하기도 했다.

 

"판검사 개업 금지해야" vs "법조일원화로 평생법관제 효과"

[the L] 전관예우 등 법조비리 근절 토론회전문가들 "국회서 개혁조치 취해야"

장윤정(변호사) 기자 2016.07.18.

 

 

고위 판·검사의 개업을 금지하고 평생법관·검사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재차 강조됐다.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전관예우 등 법조비리 근절을 위한 토론회에선 시민단체와 변협 등의 전관비리 방지 방안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권은희 국민의당 의원과 당 정책위원회가 공동 주최한 이번 토론은 법조계와 시민단체, 언론계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그간 열린 토론회들보다 생산적인 토론이 가능했다는 평가다. 특히 관련 토론회에 그동안 불참했던 법조윤리협의회와 대법원에서 각각 참석자를 통해 기관 입장을 다소 밝힌 것도 이날 논의의 성과다.

 

주제 발표를 맡은 서보학 경희대 로스쿨 교수(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장)"국민들의 사법에 대한 불신이 매우 크다"면서 "국회가 강력한 개혁조치를 취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서 교수는 법조비리 근절 방안으로 고위직 판사·검사의 변호사 개업 금지 평생 법관·검사제 법제화 고위 공직자비리수사처나 상설기구특검 신설 전관에게 법을 유리하게 적용할 경우 법왜곡죄 신설 및 그 행위에 대한 공소시효 배제 등을 주장했다.

 

채명성 변호사(대한변호사협회 법제이사)는 두번째 발제자로 나서 법조인 양성제도 이원화로 전관 자체를 없애야 한다며 몰래 변론 처벌 강화 전관 사건수임 제한을 현행 1년에서 3년으로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토론자로 참석한 박주희 변호사(서울지방변호사회 대변인)도 평생 법관·검사제 도입에 찬성했다. 박 변호사는 판·검사 정년 연장, 정년 이전 퇴임 전관의 변호사 개업 금지를 주장했다.

 

이종기 판사(법원행정처 사법정책심의관)"법조일원화는 지난 1993년 사법발전위원회가 건의한 뒤 20년 간 논의를 거쳤다""법조일원화로 평생법관제와 유사한 효과를 가져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판사는 변협이 법조인양성 이원화 방안 등을 통해 법조일원화와 배치되는 주장을 하는 것에 대해 "법조일원화 문제는 우리나라 사법제도의 근간을 다루는 문제"라며 "충분한 검토가 필요할 것"이라고 신중론을 폈다.

 

이 판사는 "판사가 퇴직 후 변호사로 개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에 동감"이라며 "평생법관제도를 전적으로 찬성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다만 그는 "헌법은 판사의 임기를 10년으로 제한하고 있어 평생 법관을 보장하지 않고 있다""헌법 규정이 10년 임기 이후 판사의 연임을 금지하는 것인지는 불명확해 해석의 여지가 있다"며 헌법 해석이 선결과제가 될 수 있음을 지적했다.

김선화 국회 입법조사처 조사연구관은 "전관예우 문제와 같은 사법 비리 문제에 대해 제대로 된 개혁을 하려면 윤리문제 확립 등 근본 개혁이 필요하다""퇴직 법관의 변호사 개업을 일괄적으로 제한할 수 있겠느냐에 대해선 좀 더 생각해봐야 할 것"이라며 신중론에 힘을 실었다.

 

김 박사는 서 교수의 '법왜곡죄 신설'에 대해선 "어떤 정도를 법왜곡이라고 할 수 있는지 불명확해 위헌성 문제가 있다"며 추가 검토 필요성을 제기했다.

 

유동주 기자(머니투데이 더엘)"·검사 처우개선을 전제로 평생 법관·검사제나 고위 판검사 개업 금지가 가능할 것"이라며 위헌적 요소가 있는 개업금지보다는 현실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평생법관제·검사제 법제화를" 참여연대·서울변회 좌담회

이광수 서울변회 법제이사 "지나친 제약으로 볼 수 없어"

뉴스1 2016-06-09

 

 

최근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 사건으로 다시금 불거진 법조 브로커와 전관예우 등 법조비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평생법관제와 평생검사제를 법제화하자는 주장이 나왔다.

 

이광수 서울지방변호사회 법제이사는 9일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소장 서보학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 서울변회(회장 김한규)가 함께 주최한 '전관예우 근절을 위한 공개 좌담회'에서 "지금까지 전관예우 차단방안은 모두 '예우' 차단에 중점을 뒀으나 예우의 차단만으로는 전관예우를 막을 수 없다""아예 전관의 발생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평생법관제와 평생검사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 법제이사는 "서울변회가 추진하고 있는 '평생법관제·평생검사제 법제화'는 법관이나 검사로 임용되면 정년까지 복무하도록 하는 제도로 이미 상당수 외국에서 시행하고 있는 제도"라며 "판사나 검사로 퇴직한 경우 변호사로 개업할 수 없도록 하되 예외적인 경우 심사를 통해 개업을 허가하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고 밝혔다.

 

그는 평생법관제와 평생검사제의 법제화가 직업선택의 자유에 대해 많은 제약을 가하는 제도라는 점에는 동의했다. 하지만 그러한 제약이 지나친 제약이라 볼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평생법관제와 평생검사제의 법제화가 직업선택의 자유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는 것은 아니"라며 "기본권 침해가 전관예우 폐해의 근원적 차단이라는 중대한 공익적 필요성보다 크다고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2011년 전관예우방지법 도입 당시에도 상당수 법조인들이 직업선택의 자유를 제한하는 위헌적 발상이라는 이유로 반대입장을 취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그 정도 제한만으로 전관예우가 없어질 수 있느냐는 쪽으로 쟁점이 옮겨졌다""사회적 합의가 이뤄진다면 위헌시비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법제이사는 "지금 당장 제도를 시행하자는 것이 아니라 2020년 시행을 목표로 법제화를 준비하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좌담회는 서보학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의 사회로 이 법제이사와, 최영근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양은경 조선일보 기자, 서기호 전 의원이 패널로 참여했다.

 

스탕달, 살롱 공론장, 그리고 소셜 미디어

 

[고전과 소셜 미디어-2]공론장의 구조 변동

 

지디넷코리아 김익현 기자 2015.02.23.

 

"부당한 경멸을 맞으며 죽음을 맞이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서 한마디 하고자 합니다. 여러분, 나는 여러분의 계층에 속하는 영예를 얻지 못했습니다. 보다시피 나는 자신의 보잘 것 없는 운명에 반항한 일개 농부입니다." - '적과 흑' 중에서.

 

작가 스탕달의 분신이나 다름 없는 쥘리앵 소렐은 야심만만한 평민 청년이었다. 준수한 외모와 타고난 총명함을 겸비했던 쥘리앵은 가정교사로 일하던 집 안주인인 레날 부인의 마음을 사로잡지만, 남편 레날 씨에게 들켜서 쫓겨난다.

 

 

신분상승을 꿈꾸던 쥘리앵 소렐에겐 청천벽력 같은 사건. 하지만 레날가에서 쫓겨난 사건은 쥘리앵에겐 오히려 전화위복이 됐다.

 

이후 명문 후작의 거만한 딸 마틸드를 유혹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쥘리앵은 드디어 신분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겠다는 꿈에 부풀어 있다.

 

늘 그렇듯, 세상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야심만만한 평민 청년의 앞을 가로막은 것은 옛 연인이었다. 결혼식 전날 전 연인이었던 레날 부인의 밀고장이 날아들면서 모든 게 물거품이 되고 만 것. 분노한 쥘리앵은 곧바로 레날 부인을 찾아가 총탄 두 발을 날린 뒤 스스로 경찰에 체포된다.

 

앞에서 인용한 문구는 '저격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된 쥘리앵 소렐의 최후 변론 중 한 대목이다. 발버둥쳤지만 끝내 귀족 사회에 편입되는 데 실패한 한 평민의 처절한 고백이 가감없이 배어 있다.

 

'적과 흑'을 쓴 스탕달은 쥘리앵 소렐과 비슷한 삶을 살았다. 일개 하사관 출신인 나폴레옹이 유럽 전역을 호령하는 것을 목격한 스탕달은 그 무렵의 야심 많은 평민 청년들처럼 신분상승이란 거대한 꿈을 가슴에 품고 있었다. 쥘리앵 소렐의 절규가 더 가슴에 와닿는 것은 바로 작가의 분신이나 다름 없기 때문일 것이다.

 

18세기 살롱, 21세기 소셜 미디어의 원형?

 

이번엔 스탕달의 적과 흑과 비슷한 시기 유럽을 다룬 또 다른 작품으로 눈을 돌려보자. 신방과 출신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음직한 책. 하지만 끝까지 읽은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은 책. 바로 위르겐 하버마스의 '공론장의 구조변동'이다. 교수 자격 논문을 발전시킨 이 책은 하버마스 사상의 젖줄이나 다름 없는 중요한 의의를 갖고 있다.

 

하버마스는 이 책에서 자본주의 발전과 함께 국가와 시민 사회 사이에 존재하는 또 다른 사회 영역에 주목한다. 이 곳이 바로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의 중간에 자리잡고 있는 공론장이다.

 

하버마스는 부르주아 공론장의 맹아를 17세기 후반 영국으로 잡고 있다. 영국의 뒤를 이어 프랑스에서는 18세기, 그리고 독일에서는 그보다 좀 더 늦게 부르주아 공론장이 탄생했다는 것이 하버마스의 기본 입장이다.

 

물론 하버마스가 이 책에서 진짜 관심을 갖는 것은 '공론장''구조 변화'. 다시 말해 근대 시민사회의 발전과 함께 공론장이 재봉건화되면서 사회적 개인들이 비판적 청중 역할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여기서 관심을 갖는 것은 재봉건화되기 이전의 공론장, 즉 프랑스와 영국에서 18세기에 융성했던 공론장이다. 하버마스는 이 시기 카페와 살롱을 민주적 토론이 융성했던 공론장의 모범으로 평가하고 있다. 하버마스의 글을 그대로 옮겨보자.

 

"1680년과 1730년 사이에 번성했던 커피하우스와 섭정 시기와 혁명 사이 기간의 살롱이다. 이것은 영국이나 프랑스에서 처음에는 문예적 비판의 중심지였으며 후에는 정치적 비판의 중심지가 된다. 여기서 귀족주의적 사교계와 부르주아적 지식인들 사이에서 교양층의 평형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102)

 

당시 카페와 살롱은 문예토론의 중심지였다. 요즘 표현으로 하자면 기본 플랫폼이나 다름 없었다.

 

하버마스의 표현을 그대로 옮기자면 "18세기의 위대한 문필가들 중 먼저 이러한 담론으로, 즉 아카데미에서의 강연과 무엇보다도 살롱에서의 담론으로 먼저 자신의 기본 생각을 토론에 부치지 않았던 사람은 거의 없다(105)”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막힌 사회와 열린 사회

 

다시 '적과 흑' 얘기로 돌아가보자. '적과 흑' 주인공인 쥘리앵 소렐을 힘들게 한 것은 꽉 막힌 사회 구조였다. 자신의 야심을 맘껏 펼칠 수 없는 폐쇄된 구조 때문에 숨이 막혔다. 유럽에서 한 때 번성했던 카페와 살롱 중심 공론장은 숨막힐 듯한 폐쇄적인 사회 속에 자리잡은 자유의 공간이었다. 그 때문에 18세기 유럽의 카페, 살롱 공론장에서 블로그와 SNS를 비롯한 시민 저널리즘의 원형을 찾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여기서 조금 비약을 해보자. ‘적과 흑의 폐쇄된 구조는 전통 언론들이 이슈를 독점하던 시대에 비유할 수 있지 않을까? 모든 주장을 언론을 통해서만 유통되던 시절. 쥘리앙 소렐처럼 야심많은 젊은이들도 귀족 사회 속에 편입되지 않으면 아무런 일도 할 수 없었던 것처럼, 제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라도 기자들의 펜을 빌리지 않으면 자신들의 주장을 펼칠 수 없었던 시대.

 

하버마스가 카페와 살롱문화를 그토록 높이 평가한 것은 이런 폐쇄적 구조를 무너뜨린 힘 때문이었다. 그의 표현을 그대로 옮기자면 "만찬회, 살롱, 커피하우스가 공중의 범위와 구성, 교제 스타일, 논의의 풍토, 주제의 정향에 있어 아무리 다르다 하여도, 이들 모두는 경향적으로 사적 개인들간에 벌어지는 지속적 토론을 조직화"했다.

 

특히 눈에 띄는 강점은 바로 '성역없는 토론' '계급장을 뗀 토론'이 가능했다는 부분이었다. 역시 '공론장의 구조변동'에서 그 부분을 그대로 옮겨보자.

 

"첫째, 지위의 평등을 전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지위 전체를 도외시하는 일종의 사회적 교제가 요구된다. 서열의식에 반하여 경향적으로 동등함의 예외가 관철된다.

 

 

둘째, 이러한 공중의 토론은 이제까지 의문시되지 않았던 영역의 주제화를 전제한다.

 

셋째, 문화를 상품 형태로 전화시킴으로써 문화를 비로소 토론능력을 갖춘 문화로 만들어낸 동일한 과정이 공중의 원칙적 비폐쇄성을 가져온다." (107~108)

 

소셜 미디어의 또 다른 특징은 끼리 끼리모이는 성향이 강하다는 점이다. 그래서 일부 학자들은 공적담론의 실종을 우려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부분에선 특정 이슈에 대해 좀 더 깊이 있는 토론이 가능하다는 해석도 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커피하우스와 살롱의 시대엔 어땠을까? 미셸 스티븐스의 고전적 저작인 뉴스의 역사에 따르면 당시에도 상황은 비슷했다. 흥미롭게도 커피하우스도 나름대로 다루는 주제가 명확했단 얘기다. 역시 그 부분을 그대로 옮기면 이렇다.

 

"당시 런던은, 오늘날 수많은 잡지들이 쏟아져나와 잡지 홍수 시대를 이룬 것처럼, 수많은 커피하우스로 포화 상태를 이루었다. 그래서 커피하우스는 작은 규모의 특정 손님을 찾아야했는데, 그 때문에 증권에 관심 있는 손님이 모이는 커피하우스는 증권 거래소, 테니스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주로 모이는 커피하우스는 테니스 코트라는 별명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뉴욕 커피하우스는 식민지 국가와의 무역에 대해 토론하는 것에 관심이 많은 남성들의 출입이 많은 곳이었다. 그리스 커피하우스는 학자들이 많이 출입했다. 연국인 커피하우스와 문학인 커피하우스도 있었다." ('뉴스의 역사' 51)

 

스탕달의 적과 흑이 그리는 세계는 암울하다. 신분의 벽이 강하게 작용하는 폐쇄된 사회다. 굳이 따지자면 나폴레옹 몰락 이후 프랑스 전역을 강타한 반동 열풍의 영향도 적지 않게 작용했던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

 

하지만 적과 흑을 썼던 평민 스탕달은 파리의 살롱 문화에서 정신적인 자유를 만끽했다. 우리에겐 백과전서파로 널리 알려진 평민 디드로 역시 살롱의 스타였다.

 

하버마스의 공론장의 구조 변동은 바로 그 자유의 시대에서 논의를 시작하고 있다. 그 논의에서 우리는 21세기 소셜 미디어의 전형적인 모습을 읽어낼 수 있다. 그게 고전의 힘이요, 위대한 학자의 통찰력이 아닐까?

 

http://blog.naver.com/dydrkxks/220386291199

 

하버마스가 본 공론장의 역사와 문제점, 대안 2015.06.10.

 

<공론장의 역사>

 

1. 군주제 하의 과시적 공론장

 

- 군주가 지식인들을 불러서 연구, 공연 등을 시킨다. 이는 문화나 학문의 발전을 위함이 아니라 군주, 소수자의 권력을 과시하기 위함이다.

 

- 오픈되어 있지 않다. 비민주적.

 

2. 부르주아지(문예적, 사적인) 공론장 18세기 전반

 

- 부르주아 공론장의 맹아를 하버마스는 17세기 후반 영국으로 잡고 있다. 하버마스는 살롱을 민주적 토론이 융성했던 공론장의 모범으로 평가한다.- why? 폐쇄적인 구조를 무너뜨린 힘 때문이다. 성역 없는 토론, 계급장을 뗀 토론이 가능했다.

 

[공론장의 구조변동] 참고

cf) "1680년과 1730년 사이에 번성했던 커피하우스와 섭정 시기와 혁명 사이 기간의 살롱이다. 이것은 영국이나 프랑스에서 처음에는 문예적 비판의 중심지였으며 후에는 정치적 비판의 중심지가 된다. 여기서 귀족주의적 사교계와 부르주아적 지식인들 사이에서 교양층의 평형이 형성되기 시작했다."(102)

"18세기의 위대한 문필가들 중 먼저 이러한 담론으로, 즉 아카데미에서의 강연과 무엇보다도 살롱에서의 담론으로 먼저 자신의 기본 생각을 토론에 부치지 않았던 사람은 거의 없다(105)”

 

문화를 상품 형태로 전화시킴으로써 문화를 비로소 토론능력을 갖춘 문화로 만들어낸 동일한 과정이 공중의 원칙적 비폐쇄성을 가져온다." (107~108)

 

- 상공업의 발전과 더불어서 신흥 귀족층이 참여하여 자유로운 문예비평과 시사토론을 하는 사교모임과 살롱의 형태로 진화하게 된다. 살롱은 문예 토론의 중심지였다.

 

- 공적인 영역은 군주의 통제를 받기 때문에 사적인 영역으로 공론장이 형성된다. 자신들만의 영역을 만들기 위함이다.

 

- 소수 자산가들에 의한 공론장이다. 자신들의 영역을 만들기 위한 공론장으로 정치적으로 위협이 되지는 않는다.

 

(주로 자유를 외치는 소수 엘리트 자유주의자들)

 

3. 대중적 공론장 18세기 후반

 

- 정치적 관심의 확대와 함께 대중의 공론장이 등장.

 

- 자유를 누리던 소수의 엘리트만의 공론장이 아님. 부르주아지의 자유주의적 공론장과 다른 민주주의적 공론장이다. 평등을 중시!

 

- 공론장이 공적인 영역에 등장한다. 대중들이 공론장 안으로 들어온다.

 

- 모두가 평등하게 자유롭다! 그러면서 서로를 제약한다.

 

- 여론이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길 갈망하는 공중의 비판적 담론으로 성격이 굳어지면서 국가가 사회의 요구와 교감하게 만드는 수단이 되었다.

 

4. 과시적 공론장의 왜곡 = 공론장의 재 봉건화.

 

- 체계의 합리성만을 홍보하는 과시적 공론장이 돌아온다.

 

- 사람들은 보편적인 주권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지만 이미 시스템 하에 지배당하고 있다. 전혀 대중들이 체계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 그렇지만 민주주의라고 말한다.

 

- 목적에 대한 합의가 없다.

 

- 체계(관료적으로 운영되는 국가, 기업, 학교의 영역)의 논리가 지배하고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다. 목적에 대한 합의가 없다.

 

- 공론장이 홍보활동으로 조형됨에 따라 재 봉건화됨. 하버마스는 국가 간섭과 신문의 상업화 그리고 그것이 불러온 공론장의 재봉건화를 한마디로 대중 매체에 의해 만들어진 세계는 표면상으로만 공론장이다.1962”

 

1. 4번 공론장의 위기는 다르다. 세 번째에서 네 번째로 가는 과정에서 변화한 것. 한편에서는 근대 자본주의 체제자체에도 문제가 있고, 이것이 공론장을 어떻게 왜곡시키는지. 모든 사람들에게 언론에 자유를 주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그러면 왜 공론장이 왜곡이 됐는가?를 보아야한다.

 

하버마스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공론장의 구조적 변화이다. 근대 시민사회의 발전과 함께 공론장이 재봉건화 되면서 사회적 개인들이 비판적 청중 역할을 상실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공론장은 본래 이기주의나 개인주의에 대항해서 모든 사람들이 차별 없이 접근 가능한 공동의 공간을 이상적인 이념으로 가지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대부분의 공론장에서 정상적인 시민이라고 간주되는 특정한 집단이 정의의 당사자로 상정되고, 이들이 말하는 공공성은 그 밖의 다른 주체들을 억압하거나 배제하는 도구로 사용된다.

 

<하버마스가 말하는 대안>

 

: ‘공개성의 재확립’ - 사적 영역의 이익집단, 정당의 결정 과정에서의 투명성을 재고. 모든 과정이 공개성이라는 기준 위에서 다뤄줘야 한다. 전시적 공공성이 진정한 공론의 기반이 될 수 있다.

 

: 진리의 합의모델이 중요하다. 진리의 합의 모델이란 상대주의로 가는 것이 아니다. 상대주의로 가면 히틀러도 합리화 될 수 있다. 교육, 제도상에서 옳은 것이 아니라 실제 삶속에서 나에게 진리가 되어야 진정한 진리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사회 문제에 이름을 붙여주어야 한다. ex) 성차별!. / 공간을 만들고 / 조직을 통해서 정치적 조치가 가능해야한다.

 

참고문헌 : [공론장의 구조변동 : 부르주아 사회의 한 범주에 관한 연구]

 

[중앙일보 나현철] '작은 정부, 큰 시장'을 모토로 하는 신자유주의가 위기를 맞고 있다. '종주국'이라 할 미국이 금융위기를 맞으면서 정부의 시장 개입이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규제를 강화하거나 새로 마련하는 움직임도 분주하다. 외환위기 뒤 미국식 금융자본주의를 지향해온 한국에게도 남의 일이 아니다. 다음은 중앙SUNDAY 보도 전문.

 

2008 919. 후대의 역사가들은 이날을 미국은 물론 세계 자본주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날로 기록할지 모른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이날 금융위기를 잠재우기 위해 전방위 시장 개입과 공적자금 투입을 선언했다. 이는 경제의 작동은 시장에 최대한 맡기고 정부는 게임의 룰만 잘 관리하면 된다는 신자유주의 정신의 퇴장으로 해석할 만하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의 칼럼니스트인 크리스티나 프리랜드는 20일자 칼럼에서 로널드 레이건 시대가 공식적으로 막을 내렸다고 했다. 모기지 회사인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을 국유화하고 AIG에 구제금융을 투입한 데 이어 전방위 공적자금 투입이란 '마지노선'까지 넘은 미국이 지난 30년간 주창해 온 신자유주의 노선을 스스로 내던진 셈이 됐다는 것이다.

 

1980년 레이건 행정부의 등장 이후 미국은 규제 완화와 감세 등 '작은 정부와 큰 시장'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해 왔다. 특히 금융시장에 대한 정부의 직접 개입은 금기로 여겨 왔다.

 

하 지만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에서 비롯된 월스트리트의 붕괴가 상황을 바꿔놨다. 19일 부시 대통령은 '전례 없는 조치'를 하겠다고 공언했다. 대규모 공적자금을 통해 부실을 정리하겠다는 내용이다. 그는 심각한 위기로부터 미국 경제의 건전성을 지키기 위해 지금 행동에 나서야 한다며 정부 개입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개입의 폭은 상상을 초월할 전망이다. 미 정부는 8000억 달러 이상의 세금을 투입해 부실채권 처리 기구를 설립할 예정이다. 민주당은 여기에 더해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대규모 재정 투입 방안까지 요구하고 있다. 결국 이번 사태로 동원될 공적자금과 재정 투입 규모는 1조 달러를 넘어 2조 달러에 달할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그 과정에서 무수한 금융회사와 기업이 사실상 국유화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정부 는 새로운 시장 질서를 명분으로 파생상품 등에 대한 다양한 규제 카드를 내놓을 전망이다. 주간 비즈니스위크는 18“30년간 미국 경제정책의 근간을 이루던 규제 완화가 강화쪽으로 급선회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월스트리트 저널도 “80년대 이후 규제는 약해야 한다는 신념을 고수하던 미국 정부가 적극적 행동주의로 복귀했다고 전했다.

 

시장 개입을 반대하는 목소리는 미약하다. 보수파 공화당 의원 100명가량이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과 헨리 폴슨 재무장관에게 대형 금융회사를 더 이상 구제하지 말라고 요구하는 편지를 보낼 예정인 것 정도다. 이들은 구제 조치가 막대한 국민 세금을 축내는 것은 물론 도덕적 해이를 부추긴다지금은 기업이 아니라 납세자를 구제해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하 지만 시장은 부시 대통령의 조치에 두 팔을 들어 환영했다. 미국과 유럽·중국 등 세계 증시가 폭등했다. 주요 기업 CEO들도 시장의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일이라며 찬성 입장을 밝혔다. 스스로를 규제 철폐주의자로 규정해온 존 매케인 공화당 대통령 후보도 적절한 규제가 국민을 보호할 것이라며 입장을 바꿨다.

 

이제 미국식 신자유주의는 설 땅을 잃어 가고 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셉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는 금융위기는 장사가 잘될 땐 정부 개입을 거부하고, 위기가 닥치면 정부에 손을 벌리는 위선의 결과물이라고 지적했다. 거물 투자자인 조지 소로스는 지난 1월 다보스 포럼에서 금융시장의 자율성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인식이라며 '시장이 정부보다 효율적'이란 신자유주의의 근본 가정에 의문을 제기했다.

 

정 부의 적극적인 역할을 강조하는 케인스식 경제정책에 반기를 든 신자유주의는 79년 영국 대처 정부가 민영화와 감세, 복지 및 재정 축소를 추진하면서 유력한 정책 수단으로 떠올랐다. 80년 집권한 레이건 대통령의 '레이거노믹스'는 클린턴 행정부를 거쳐 부시 행정부로 계승됐다. 97년 말 아시아 외환위기는 '세계화''개방'으로 포장된 신자유주의를 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가 받아들이는 계기가 됐다.

 

조순 서울대 명예교수는 자본주의 시스템도 세월에 따라 노화하는 게 당연하다파국을 맞은 신자유주의의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외환위기 뒤 한국은 미국식 신자유주의 노선을 따라왔다종말은 아니더라도 한계가 드러난 이상 이를 추종해온 기본 노선의 수정이 필요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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