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나가는 법조일원화] “재판의 질 향상취지 무색

경향신문 20070316

 

경험이 풍부한 변호사를 판사로 임용해 재판의 질을 높인다는 취지로 도입된 법조일원화제도가 오히려 일부 지역에서 사법부 신뢰를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경력법관이 옛 동료들이 맡은 사건을 처리할 경우 공정성 시비도덕적 해이를 차단할 수 있는 장치가 시급히 보완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변호사를 하다가 법복을 입게 된 판사 중 일부는 재판의 공정성에 문제가 될 수 있는 동료 변호사의 재판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는 변호사들이 많은 지역에서 판사로 생활하기를 고집했다. 한 지역에서 변호사·판사·변호사로 번갈아 옷을 갈아입어 사실상 판사직이 몸값 불리는 수단이 되어버린 경우도 있었다.

 

이 같은 사실은 경향신문이 151998년부터 임용된 변호사 출신 판사 127명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확인됐다. 법조일원화 시행 초기부터 제기돼 온 공정성 시비 우려가 현실로 나타난 셈이다.

 

동료 변호사를 법정에서=지난해 4월 부산지법의 판사는 배당된 소장을 보다가 깜짝 놀랐다. 소장 변호인란에 판사로 임용되기 전 몸담았던 법무법인 대표 변호사의 이름이 선명하게 찍혀있었던 것이다. 판사는 난감했다. 그러나 재판이 많은데 이런 이유로 기피신청을 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재판을 감행했다. 이후 1년여 동안 9차례나 법무법인이 맡은 사건의 재판을 했다. 결과는 법무법인의 63. 판사는 재판은 공정했고 항의를 받은 적이 없다면서도 상대측 변호사가 나와 한때 동료였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소송 당사자들이) 재판을 어떻게 봐줄지 솔직히 걱정이 된다고 털어놓았다.

 

판사·변호인이 한때 동료였다는 점을 들어 실제로 재판의 공정성에 문제를 제기하는 일도 벌어졌다. ‘석궁사건의 김명호 전 교수가 대표적인 사례다. 성균관대의 입시문제 오류를 지적한 뒤 재임용에서 탈락한 김전교수가 낸 소송에서 성대측 변호인은 담당재판부의 부장판사가 변호사 시절 몸담았던 법무법인이었다. 이를 알게된 김전교수는 패소후 판결을 비판하고 나섰다. 사실 부장판사가 법무법인의 소송을 맡은 것이 그때가 처음은 아니었다. 판사는 2004년부터 약 2년여 간 7차례 법무법인의 소송을 맡았다. 부장판사는 “(나는)분사무소에 있었기 때문에 사실상 동료변호사들은 아니었다같은 법무법인이 수임한 재판이라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법원 내부에서조차 이점은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법원행정처의 한 관계자는 재판부가 당연히 기피신청을 했어야 할 사안이라고 비판했다. 또 다른 변호사 출신 판사들도 같은 법무법인 소속은 아니지만 한때 함께 일했던 변호사를 법정에서 봤을 때 난감했다차라리 공식지침을 마련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판사는 몸값 올리는정거장?=광주에서 약 15년간 변호사로 활동한 . 꽤 유명한 지역인사인 그는 법조경험과 능력을 인정받아 2000년 광주지법에서 법복을 입게 됐다. 그러나 그가 법원에 머문 기간은 단 1. 씨는 다시 같은 지역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냈다. ‘··변 현상의 대표적인 경우다.

 

변호사 측은 개인사정 때문에 그만뒀을 뿐 특별한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다른 변호사들은 판사로 짧게라도 재직하면 적어도 준 전관예우정도는 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고의는 아니었을지라도 사실상 판사 재직이 몸값 올리는 수단이 돼버린 셈이다. 이처럼 같은 지역에서 변호사·판사·변호사로 연달아 옷을 갈아입은 경우는 이뿐만이 아니다. 1979년부터 제주에서 활동해온 변호사는 98년부터 3년간 제주에서 판사생활을 한 뒤, 다시 제주도에 변호사 사무실을 냈다.

 

거꾸로 판사로 재직했던 지역에서 변호사 개업을 했다가, 다시 지역 판사로 돌아가는 경우도 있다. 98년부터 광주에서 판사로 일했던 씨는 2001년 광주에서 변호사로 활동한 뒤, 2004년 다시 광주지방법원의 판사가 됐다. 판사 경력으로 전관예우의 혜택도 받고, 변호사 경력으로 법조일원화의 혜택도 받은 셈이다.

 

변호사 시절 자신의 텃밭에서 판사생활을 하고 있는 이들에 대한 비판도 나오고 있다. 변호사 시절 쌓은 지역인과의 친분관계가 재판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그동안 이 문제에 대해 변호사 출신 판사들은 주로 판사들 스스로 주의해야 할 문제라고 말해왔지만, 속내는 달랐다.

 

충청지역에서 판사생활을 하고 있는 . 그는 인근 지역에서 15년간 변호사 생활을 해온 토박이이다. 당연히 그 지역엔 등산과 골프를 함께 즐기던 변호사들이 많다. 판사는 변호사 시절 친하게 지냈던 이들이 변호인으로 나설 경우, (그들에게) 1%의 이득도 없다면 그건 거짓말일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상황이 이런데도, 법원 측에서는 특별한 감찰활동조차 벌이지 않고 있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한상희 소장은 변호사 출신 판사들은 많아지고 있는데도, 그에 걸맞은 윤리지침, 감찰제도 등이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변호사 출신 판사들의 도덕적 해이를 막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게 시급하다고 말했다.

 

법조일원화

 

사법연수원을 졸업한 뒤 변호사 자격을 가지고 검사나 변호사 등 5년 이상의 법조 경력을 쌓은 사람 중에서 법관을 임용하는 방식이다. 1997년부터 비상시적으로 시행되다 사법개혁위원회의 건의에 따라 지난해부터 정기적인 법조일원화 계획이 세워져 시행됐다. 2006년 경력 법관은 전체 신임법관의 10% 정도였으나 2012년에는 50%로 늘어난다.

 

----------------------------------------

 

[빗나가는 법조일원화] 법원도 고민중회피만 하자니 업무 차질

20070316

 

 

경력법관이 한때 변호사로 일하던 법무법인의 사건을 맡을 경우 공정성 시비를 어떻게 피해갈지를 놓고 법원도 깊은 고민에 빠져있다.

 

현재 형사소송법상 회피사유에는 이런 문제가 반영돼 있지 않다. 다만 법관이 불공정한 재판을 할 염려가 있을 때 회피할 수 있다는 포괄적 규정만 있을 뿐이다.

 

대법원 변현철 공보관은 사건을 재배당하는 방법은 법원장 직권으로도 가능하지만 변호사 경력이 재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오해를 없애기 위해 지침이나 예규를 만드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한계가 있을 수 있다. 향후 신임판사 중 절반이 경력법관으로 채워지고 사건수임 건수가 많은 중대형 로펌 출신 법관들이 법원이 들어오는 상황이 되면 관련사건을 피하기도 어렵고 사건을 무조건 회피하다간 자칫 재판업무에 차질을 빚을 수 있기 때문이다. 보다 정교하고 장기적 대책 마련이 필요한 대목이다.

 

법원은 경력판사로 법원에 들어왔다가 다시 변호사로 개업하는 경우에 대해서는 법조일원화 취지에 맞지 않아 바람직하지 않지만 막을 도리가 없다는 입장이다. 법관으로 정년까지 일하는 법관종신제가 정착되거나 법관에 대한 대우가 변호사에 비해 대폭 올라가지 않는 한 근본적 해결이 어렵다는 것이다.

 

다양하고 우수한 재야 경력을 지닌 사람을 판사로 임용하자는 것이 제도의 취지이지만 정작 법원이 원하는 우수한 인재들은 법원을 그리 희망하지 않는다는 문제도 있다.

 

재야와 재조의 대우가 큰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변공보관은 판사로 일하다 잠시 개업한 뒤 다시 판사로 들어오는 경우에 대해 문제 제기할 수 있지만 법원 입장에서는 판사 출신 경력을 우선하지 않을 수 없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