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헛, 이것 참… 난감하네.”18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성전환자’의 호적상 성별 정정신청’에 대한 비공개 심리를 진행하던 이용훈 대법원장은 연방 곤혹스러운 듯 입맛을 쩍쩍 다셨다.
`성(性)전환자`의 호적 정정(성별 변경) 허가를 해줘야 할지, 말아야 할지에 대해 18일,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의학계와 종교계의 의견을 청취했다. 3시간 넘게 의견이 오갔지만 이용훈 대법원장은 결국 정답을 찾지 못한 채 "허허허…. 참 어려운 문제군요"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심리에는 대법원장 등 10명의 대법관(13명 중 3명은 해외출장과 병가로 불참)이 참석했고, 이무상 연세대 의대 비뇨기과 교수가 찬성 쪽으로, 국가발전기독연구원장인 박영률 목사가 반대 쪽으로 나왔다.
한 대법관은 "성전환수술 뒤 원상복구를 원하는 경우는 없느냐"고 물었고, 또 다른 대법관은 "법관이나 국가기관으로부터 허가를 받은 사람에 한해 성전환수술을 받게 하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은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트랜스젠더는 성적 질환자"라고 전제한 이무상 교수는 "정신과 의사의 진단을 받은 뒤, 법원에서 허락하면 성전환수술을 받는 게 바람직하다"고 답했다. 이 교수는 "성전환수술이 필요한 사람인지 여부를 판단할 의학ㆍ법률적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며 "한때 수술을 하면서 `멀쩡한 생식기를 수술했다가 하느님에게 야단맞으면 어쩌나`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고 말했다.반면, 박 목사는 "성은 창조자의 권한이다. 성전환을 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수술이 아니라 각종 치료가 필요하다. 성전환수술은 `성형수술`에 불과하다"고 반박했다. 이어 박 목사는 "한 번 호적을 정정해주면 봇물이 터질 것이며, 소수의 권익이라는 이름으로 사회적 공동체의 안정성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 군복무 기피용으로 성을 바꾸는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고, 각종 범죄자들이 범죄를 저지른 뒤 이를 악용할 개연성도 있다"고 역설했다
이에 김영란 대법관이 "정신과 치료를 받았는데도 도저히 치료가 안 되는 경우도 있고, 범죄나 윤락행위를 야기할 우려가 있다면 제도적으로 보완을 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묻자 박 목사는 "(성전환자들은)약물이나 음식을 잘못 먹어서 변이를 일으킨 것"이라며, "그것은 초등학교 때부터 교육을 제대로 하면 된다"고 말했다.
이날 대법 정 분위기는 요즘 유행하는 말로 ‘대략 난감’에 가까웠다. 이 대법원장과 대법관들은 성전환과 관련한 ‘기본 단계’부터 참고인으로 출석한 이무상 연세대 의대 교수와 쉽게 ‘소통’하지 못 했다. “수술을 하고 나면, 성적인 기능도 전환이 되는가”, “ 여자가 남자로 성전환해서 남자로 사는 경우는 없는가” 등 질문을 쏟아냈지만 이 교수의 답변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대법관들은 고개를 가로저었다.“동성애자와 성전환자는 성(性)체위가 다르다”라는 이 교수의 진술에 이 대법원장이 “거 참 난감하네”라며 난처한 표정을 지을 때에는 다른 대법관들이나, 객석에서 이를 취재하던 기자들 모두 터져나오는 웃음을 애써 참아야 했다. “남성으로 태어났으나 여성으로 키워졌다면 남성인가 여성인가”라는 질문에 “생물학적, 사회심리학적 기준을 종합해 판단해야 한다”는 대답이 나오자 “참, 어려운 문제군요”라는 한숨이 이어졌다.성전환에 대해 보수적 성향을 보여온 대법원이 하급심 판결이 엇갈리고 있는 상황에서 이처럼 참고인 의견을 직접 듣겠다고 나선 것은 일단 파격적인 일이다. 서둘러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셈이다. 하지만 대법관들은 성전환자 문제를 사법부가 해결해야 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도 숨기지 못했다. 한 대법관은 “가장 권력이 막강했던 영국 의회도 남자를 여자로 바꾸는 것은 하지 못했다. 입법이 근원적인 해결책 아닌가”라고 묻기도 했다. 대법원은 빠르면 다음 달 최종 결론을 내릴 예정이다. 하인스 워드의 성공신화가 어둠속에 갇혀 있던 ‘혼혈문제’를 양지로 끌어냈듯, 이번 사건이 또 다른 소수자들을 우리 사회의일원으로 보듬어 안는 계기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한편 대법원은 성전환자의 호적 정정을 허가할지 여부를 다음달께 결정할 예정이다. 그동안 1, 2심에서 재판부의 판단에 따라 다른 결론이 났지만 대법원 전원합의체 결정이 내려지면 향후 하급심에서 일관된 법률적 잣대로 작용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