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제> 지문 <>에 제시된 선거의 양상을 살펴보고, 지문 <>에 제시된 추첨이 대안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하여 자신의 견해를 논술하시오.

 

<> 그 다음의 순서는 희미한데 한 사람, 애국애족을 되풀이해서 들먹이는 사람이 있었다. 그 뒤에 등단한 사람이 그것을 꼬집었다.

 

이제 막 말한 사람, 틀림없이 애국자입니다. 개장국 잘 먹거든요. 또 애족자인 것도 틀림없습니다. 돼지 족발 잘 잡숫거든요.”

 

애국애족한다는 사람이 가만있을 리가 없었다. 단상에 뛰어올라 꼬집은 자의 멱살을 잡는 난장판이 벌어졌다. 뒤에 알고 보니 사돈끼리라고 했다.

 

그 다음 차례의 어떤 사람은 자기가 국회의원이 되기만 하면 공출을 없애고 뭣을 없애고 하며 한창 신이 나게 없애 가는 통에 세금을 없애겠다고 나섰다.

 

미친놈 다 보겠다.”

 

고 내 곁에 있던 영감이 퉁명스럽게 중얼거렸다. 그러자 저편에서,

 

이왕 없앨 바엔 국회도 없애 버려라.”

 

고 고함이 터졌다. (중략)

 

내 기호는 10, 보시오, 위에 막대기 다섯 개 밑에도 다섯 개, 노름꾼 문자로 5땡이라는 겁니다. 열다섯 사람이 나왔는데 짓고땡이 끗수로선 내가 최고 아닙니꺼. 노름으로 치면 이긴 거나 마찬가지지요. 그런데 여러분이 표를 찍어 주건 안 찍어 주건 나는 국회에 갈랍니다. 내 기술이 목공이요. 책상 하나 걸상 하나 만들어 가지고 국회에 턱 갖다 놓고 앉아 버틸 참이오. 국회의원 노릇을 한다 이 말씀입니다. 내 아들이 작년 사범학교에 시험을 봤는데 뚝 떨어졌거든요. 그래 책상과 걸상을 만들어 아이놈에게 짊어 지우고 학교로 가서 교실 한구석에 턱 갖다 놓고 아들놈 보고 앉으라고 하고 나는 옆에 서 있었습니다. 선생님 보곤 동냥글 좀 배웁시다 했지요. 그랬더니 1주일 만에 보결로 입학시켜 줍디다. 시험에 떨어진 학생을 배짱으로 입학을 시키는디 백성을 돌보는 국회가 괄세를 하겠습니까. 허나 선거에 떨어진 놈이 국회에 가서 옥신각신한다면 우리 고을의 창피가 아닙니꺼. 그러니 그런 창피가 없도록 미리 내게 표를 많이 던져 주십시오. 기호는 10, 5땡이올시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고.”

 

하며 곁에 있는 노인이 우리더러 들으라고 씨부렸다.

 

저자의 아들은 아버지가 당선되면 나라 일이 말이 아니고 아버지가 낙선되면 우리 집 일이 말이 아니라면서 돌아댕긴다오.”

 

말이 내킨 참인지 그 노인은 또 이런 얘기도 들려 주었다. 윤또상이란 입후보자의 아들은 운동원을 트럭에 가득 싣고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윤또상 군을 국회에 보냅시다.”

 

하고 선창을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영감의 주석이 또 걸작이었다.

 

국회의원도 좋지만 아들놈이 제 애비를 윤또상 군이라고 해? 후레자식 같으니…….”

 

정견 발표회가 끝나자 나와 이광열은 그 노인을 막걸릿집으로 청했다. 거기서 별의별 우스꽝스러운 얘기를 들었다. 돈의 힘, 술의 힘, 온갖 수단이 쓰여진다는 얘기는 우울했지만 처음으로 겪는 선거라 그런 정도로 되어 가는 것도 반가운 일이라고 우리들은 웃었다.

 

저렇게 해서 이루어지는 국회의 꼴이 뻔하기도 하지만.”

 

하면서도 이광열은,

 

그러나 로마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니까.”

 

하고 덧붙이길 잊지 않았다. - 이병주, 관부연락선에서

 

<>

 

근대국가의 크기는 추첨제도의 폐지를 설명하지 못한다. 규모가 크고 인구 밀도가 높은 국가에서도 커다란 정치 단위로부터 적은 수의 개인을 선발하기 위해 기술적으로 추첨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 체제의 크기와 상관없이 추첨을 통해 필요한 숫자만큼의 개인을 선발하는 것은 가능하다. 선발의 한 방법인 추첨은 실행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실제로, 오늘날에도 배심원을 구성할 때 정기적으로 추첨을 사용하는 사법제도가 있다. 따라서 현실적인 문제로 인해 추첨이 아닌 선거에 전적으로 의지하게 된 것은 아니다.

 

사실상 오늘날에는 추첨의 정치적 사용이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 오랫동안 추첨은 근대 사회의 정치 문화에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고, 오늘날 우리는 추첨을 괴상한 관습 정도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물론 우리는 추첨이 고대 아테네에서 사용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고, 비록 놀랍다는 말투이지만, 이러한 사실을 가끔 언급하기도 한다. 실제로 아테네 사람들이 이러한 절차를 채택할 수 있었다는 것은 난해한 수수께끼처럼 보인다. 그러나 세계의 중심을 형성하는 데 일조한 현대 문화의 보편적 관점을 뒤집어 보는 것이 우리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아마도 이렇게 질문해 보는 편이 훨씬 나을 것이다. “왜 우리는 추첨을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우리 스스로를 민주주의자라고 부르는 것일까?” (중략)

 

아테네 민주정은 민회(ekklesia)가 수행하지 않는 대부분의 기능을 추첨을 통해 선출된 시민들에게 위탁했다. 이 원칙은 주로 집정관(archai)들에게 적용되었다. 아테네 행정부를 구성했던 700명 가량의 행정직 중에서 600명 정도가 추첨을 통해 충원되었다. 아테네에서 제비뽑기(kleros) 방식을 통해 선임된 행정직은 대부분 협의체였으며, 임기는 1년이었다. 일생 동안 다른 행정직에 임명될 수는 있었지만, 동일한 직책을 한 번 이상 가질 수는 없었다. 복무시간표(이전의 직책에 대한 정산과 감사를 모두 마치기 전에 새로운 직책에 취임할 수 없다는 규정)의 존재는 실질적으로 한 사람이 어떤 행정직을 2년 연임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30세 이상의 시민들(기원전 4세기에 약 2만 명 정도) 중에서 아티미아(atimia; 시민권의 박탈)라는 처벌을 받지 않은 사람은 누구든지 행정직에 취임할 수 있었다. (중략)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테네 정치체제는 시민들이 미숙하다거나 무능력하다고 판단한 행정관의 선출을 방지하는 제도적 장치를 가지고 있었다. 우선 행정관은 언제나 민회와 시민법정의 감시를 받았다. 임기가 끝나면 결산 보고서를 제출해야 했으며, 임기 중에도 시민들이 그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었고 직무 정지를 요구할 수 있었다. 행정관에 대한 신임을 묻는 것은 최고회의(ekklesiai kyriai)의 필수 안건이었다. 시민이면 누구나 행정관에 대한 불신임 투표를 제안할 수 있었다. 만약 행정관이 투표에서 지면 즉각적으로 업무가 정지되고 사건은 법정에 회부되어 무죄(그 이후에는 다시 업무를 재개할 수 있었다) 혹은 유죄 판결을 받게 된다.

 

이러한 제도적 장치들은 상식이었기에, 모든 시민들은 행정관이 되면 직무 결산 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는 것, 탄핵될 가능성이 늘 있다는 것, 소송에서 지면 처벌을 감수해야 한다는 사실 등을 사전에 알고 있었다. 이와 관련하여 특히 주목할 필요가 있는 점은, 행정관으로 선출되기를 원하는 사람의 이름만이 추첨기계(kleroteria)에 넣어졌다는 사실이다. 30세 이상의 모든 시민을 대상으로 추첨이 행해진 것이 아니라, 후보로 지원한 사람에 한해서만 추첨이 이루어졌다.

 

- 버나드 마넹 지음, 곽준혁 옮김, 선거는 민주적인가에서

 

건대 2005 정시 해설

 

<출제 의도 및 해설>

 

우리는 여러 가지 사회적 관습이나 제도에 별다른 심사숙고 없이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선거만 하더라도 그것이 민주주의의 이념을 실현하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여기곤 한다. 이번 문제에서는 이러한 고정관념에 대하여 도전적인 문제 제기를 한 지문을 제시하여 수험생들로 하여금 통념적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 사회 제도 및 현상을 새로운 각도에서 살펴보고 창의적인 대안을 모색해 보도록 하였다. 인간과 사회에 대한 통찰력 및 유효한 문제해결 능력을 점검하는 데 출제의 주안점을 두었다.

 

문제는 지문 <>에 묘사된 선거의 양상을 고려하여 지문 <>에 제시된 추첨의 대안적 가능성 여부를 논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두 지문 가운데 <>에 초점이 놓이는 셈이다. <>의 내용은 고대 아테네에서 시행됐던 추첨 제도의 요목을 집약적으로 정리한 것으로서 면밀히 숙고할 필요가 있다. 특히 뒷부분에 나와 있는 미숙하거나 무능력한 행정관의 선출을 방지하는 제도적 장치에 관한 사항은 추첨을 엉뚱하거나 초보적인 제도로 논단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추첨의 유효성을 부정하는 견해를 제시하고자 할 때 치밀한 반박 논리가 필요한 상황이다. 이와 함께 지문 첫머리에는 오늘날 배심원 선출에 있어 추첨을 적용하는 사례가 제시되어 있어 그것이 현대에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이는 추첨을 한낱 지난날의 제도일 뿐이라고 몰아붙일 수 없게 하는 한편, 오늘날 추첨을 적용한다면 어느 분야에 어떤 방식으로 적용할 수 있을까(또는 없을까)를 고민하도록 하는 조건이 된다. 추첨의 대안적 가능성을 인정하든 그렇지 않든간에 자료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그에 따른 논리적 판단이 필요한 것이다.

 

지문 <>는 지문 <>에 대한 보조 자료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그 내용이 별로 어렵지 않다. 하지만 이 지문 속에도 몇 가지 신중히 고려할 사항들이 담겨 있다. 전체적으로 선거의 혼탁상과 난맥상이 묘사되어 있지만, 글 뒷부분에 처음으로 겪는 선거라는 사실과 함께 앞으로 나아질 수 있다는 전망이 제시되어 있어 선거 자체를 부정하고 있지는 않다. 수험생들은 선거의 난맥상이 여전하며 본질적이라고 하는 쪽으로도, 또한 그것이 부수적인 것이며 개선될 수 있다고 하는 쪽으로도 논지를 전개할 수가 있다. 이때 어떠한 문제가 어떻게 이어질 수밖에 없다거나 또는 어떻게 개선 가능하다거나 하는 데 대한 판단을 할 것이 요청된다. 지문의 내용 가운데 선거에 있어서의 돈의 힘’[금권]이나 공약(空約)’, ‘비방 및 인신공격등이 중요한 화두가 될 터인바, 이러한 요소를 잘 짚어내 논리정연하게 주장을 풀어나가면 좋은 답안이 될 것이다.

 

이번 문제의 답안을 평가함에 있어 수험생이 추첨 제도의 대안적 가능성을 긍정하는가 부정하는가의 여부는 평가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두 가지 방향의 논지 전개가 모두 가능하다. 관건은 적절하고 충실한 근거에 입각하여 주장을 합리적으로 논증하는 데 있다. 이와 함께 상대편 논지에 대한 적절한 반박 근거를 갖추는 것 역시 필요한 사항이 된다. 답안 가운데는 선거와 추첨을 상호보완하는 방안을 제시하거나 선거와 추첨을 함께 비판하면서 또 다른 방안을 내거는 경우도 예상할 수 있는데, 이러한 답안에 대해서도 그 선택 자체를 문제삼기보다 근거를 제대로 갖추었는지를 살펴서 평가하게 될 것이다. 쉽게 생각 못할 독창적인 주장을 제시하면서도 구체적이고 합리적인 근거를 제대로 갖추고 있다면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반하여 지문과 상관 없이 일반론 차원에서 상투적 주장을 전개하는 글, 주어진 지문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 채 그 안에서 맴돌고 있는 글, 막연하고 어설프게 문제의 절충을 꾀하는 글 등은 낮은 평가의 대상이 된다.

 

<예시 답안 1>

 

오늘날 민주주의라고 하면 누구나 선거를 생각하고 민주주의와 선거를 동일시한다. 그러나 선거와 관련된 여러 가지 역사적 사실을 살펴보거나 선거를 한 번이라도 경험해 본 사람들은 선거가 과연 민주적인 것이고 민주주의를 제대로 구현하는 제도인지 의심하게 된다.

 

선거란 국민이 자신의 대표자를 선출하는 과정에 참여해서 각자 1표를 행사하여 대표자를 선출하여 나라의 일을 처리하도록 맡기는 것이다. 그러나 지문 <>에 보이는 것처럼 선거에는 금력, 권력이 가지는 엄청난 영향력을 비롯하여 지연, 혈연, 학연 등의 요소와 선동, 대중적 인기, 호기심, 무관심과 냉소 등의 상황적비합리적 요소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 또한 선거 과정에서의 고비용과 인력 동원, 공약(空約) 남발은 과연 그것이 훌륭한 대표자를 뽑는 적절한 절차인가 회의하게 만들고 있다. 이러한 부정적 요소를 방지하기 위해 번거롭고 복잡한 보완장치를 마련하고 있으나 문제가 쉽게 해결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국민의 대표자나 어떤 조직 또는 기관의 대표자를 선출하는 방식에는 선거와 추천, 임명, 시험 선발, 추첨 등 여러 가지 방식이 있을 수 있다. 이러한 방식들 가운데 부작용이 가장 적고 민주적인 방식은 어떤 것일까? 물론 그것은 대표자가 맡은 역할이나 기능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예컨대 전문성이 필요한 분야는 그에 맞는 지식과 자격을 갖추어야 한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대표자가 가지고 있는 기능에는 전문성보다는 건전한 상식과 합리성이 더 필요한 면이 있다. 사법절차의 진행에 있어 법관이 아닌 일반 시민이 배심원이 되어 유무죄의 결정을 훌륭히 내리고 있는 것이 좋은 사례가 된다.

 

이렇게 본다면 지문 <>에 제시된 추첨 방식이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어떻게 요행에 기대어 국민의 대표자를 선출할 수 있겠는가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선거의 필요악적 요소로 인한 사회 전체의 자원 낭비를 고려한다면 추첨의 방식이 더 간명하고 효율적일 수 있다. 능력과 성품의 문제가 제기될 수 있겠지만 자격 요건에 대한 적절한 심사(납세의무 이행, 범죄전력 여부, 병역의무의 이행 등)를 거침으로써, 또한 그 책임과 의무를 명확히 하고 직무에 대한 평가를 엄격히 수행함으로써 문제의 해결이 가능할 것이다. 오히려 이 제도를 통해 소명의식을 지닌 건전한 시민의 폭넓은 참여를 통한 민주주의 정신의 구현이 가능하다는 측면이 커 보인다. 추첨 제도의 적용에 대한 전향적인 연구 검토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예시 답안 2>

 

국가권력은 크게 입법부사법부행정부로 구분되며, 이를 조직하고 구성하는 원리는 작은 단위에서 큰 단위에 이르기까지, 하부구조에서 상부구조에 이르기까지 복잡 다양하다. 일반적으로 입법부를 구성하는 의원의 선출에 있어서는 선거가, 사법부와 행정부를 구성하는 공직자 선발에 있어서는 시험제도가 활용되지만 이밖에도 여러 방법이 병행되고 있다.

 

<>는 입법부를 구성하는 의원을 선발하는 선거와 관련하여 금권선거, 비방선거 등 선거제도의 부정적인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에서는 아테네의 행정관의 선발 방법으로 사용되었던 추첨 제도를 소개하면서 오늘날에 있어서의 민주적 사용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추첨이 대안이 될 수 있는 제도인가를 보기 위해서는 아테네의 행정관 선출방법이 과연 오늘날의 상황에 적용 가능한가의 문제를 살펴야 한다. 아테네에 있어서 추첨에 의한 대표자 선발은 아직 충분한 사회적 분화가 이루어지기 이전의 소규모 도시국가라는 배경에서 한정된 공직에 적용되었다는 점에서, 국제화전문화분업화를 특징으로 하는 현대사회에 적용하기에는 많은 난점이 있다고 본다. 적어도 이 추첨 제도는 입법사법행정 각 분야에 폭넓게 적용될 수 있는 제도가 아님은 분명하다. 각 분야의 성격과 규모에 따라 그에 적합한 선발 방법을 다양하게 적용하는 것이 타당하다. 만약, 아테네에서 행정관 추첨 제도가 사후 직무평가와 같은 제도적 장치를 통하여 효율적으로 운영되었다면, 오늘날 그러한 적용이 가능한 분야가 무엇일지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 예로 최근 사법제도 개혁에 있어서 논의되는 배심원의 구성과 관련하여 그 활용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지문 <>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국회의원 선거의 경우 금권이나 관권 선거 등의 부작용을 근거로 선거 자체의 합리성을 부정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선거의 문제점은 사회가 성숙과 함께 점차 개선돼 왔으며, 앞으로 더욱 개선해 나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무엇보다 그 제도를 통해 민주적 대의정치의 원만하고 안정적인 운용이 이루어져 왔다는 사실을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만약 그것을 하루아침에 추첨과 같은 다른 제도로 대신한다면 오히려 더 큰 혼란과 부작용이 생길 것이 자명하다. 앞서 언급한 배심원 구성 등 일부 영역에서의 조심스러운 적용이라면 몰라도, 그 이상의 폭넓은 적용에는 극히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은 위험을 무릅쓰고 불필요한 모험을 추구하는 일이 아니라 안정의 바탕 위에서 제도의 점진적 개선을 추구하는 일이라고 하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예시 답안 3>

 

현대 사회의 주류 정치제도인 대의 민주주의에는 한 사회의 대표를 선출하는 제도가 수반되어야 한다. 그 가운데 오늘날 가장 보편화되어 있는 것이 선거 제도라 할 수 있다. 많은 이들이 선거 제도를 인류가 개발한 가장 민주적이고 효율적인 대표 선출 방법이라고 믿고 있다.

 

하지만 오늘날 선거의 실상을 살펴보면 그 양상이 간단치 않음을 확인할 수 있다. 지문 <>에는 선거의 여러 부정적인 모습들이 잘 묘사돼 있는데, 이를 한때의 혼란으로 치부할 일이 아니다. 인신공격과 선심성 공약, 엄청난 선거 비용 등이 여전히 큰 문제가 되고 있다. 더욱 본질적인 문제는 선거가 재력과 학맥 등을 갖춘 일부 기득권층의 권력을 재생산하고 합리화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다수 일반 시민은 대표자가 될 기회를 얻지 못한 채 정치현실에 등을 돌리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문 <>에 제시된 고대 아테네의 추첨 제도는 우리에게 좋은 대안을 시사하고 있다. 그것은 일반의 우려와 달리 미숙자나 무능력자의 선출을 방지하는 안전 장치를 지니고 있는 효율적인 선발 제도였다. 공직에 나설 의사를 가진 시민들에게 폭넓은 기회를 주는 한편으로, 대표자의 업무 수행과 관련하여 시민들의 상시적 견제와 평가가 가능했던, 민주주의 정신에 충실했던 대의 제도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 제도를 현대사회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을 것은 아니다. 고대사회와는 크게 다른 현대의 사회정치적 상황을 고려한 보완적 적용이 필요하다. 그 보완책은 여러 맥락에서 신중하게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보완책을 구상해 볼 수 있다. 첫째, 복잡해진 현대사회의 특성을 고려해 전문성을 향상시키는 방안을 강구한다. 직무에 맞추어 추첨 대상자의 자격 요건을 특화하는 것이 한 방법이 될 것이다. 둘째, 업무의 연속성을 고려한 임기 조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직무 성격에 따른 다양화가 필요하다고 본다. 셋째, 여성이나 장애인 등 사회 소수자들의 폭넓은 참여를 유도하는 제도적 장치의 마련을 적극 고려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어떤 사회제도든 머물러 있으면 썩기 마련이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역사의 흐름에 맞추기 위해서는 끝없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정치사회적 제도 또한 예외가 아니다. 선거에 고비용비효율의 요소가 있고 비민주적 요소가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마땅하다. 추첨 제도는 그 좋은 대안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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