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 주택 30만채은행 망하게 둬라분노

 

한국일보 2010.11.17

 

요즘 아일랜드 거리에서는 유령 같은 빈집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부동산 거품 붕괴로 팔리지 않은 집이 30만채에 이르기 때문이다. 아일랜드 인구가 450만명인 것을 감안하면, 빈집 규모는 감당하기 힘들 정도다.

 

한때 선진국 대열을 넘볼 정도로 경제성장을 이뤘으나 부동산 정책 실패는 아일랜드인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놓았다고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가 17일 보도했다. 국민들의 불신과 분노는 하늘을 찌른다. 창문현관문 제작업체를 운영해온 데이브 오하라(41)씨는 한때 회사 가치가 수백만 유로를 상회했지만 20089월 부동산 거품이 붕괴된 뒤 회사는 부도났고, 지금은 실업수당으로 생활한다. 그는 "여기서는 푼돈을 빚지는 것보다 차라리 수백억 빚지는 것이 낫다""가장 죄를 많이 지은 사람들이 가장 덜 고통 받고 있다"고 비난했다. 무리한 주택대출에 나서 경제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놓고도 정부지원으로 살아남은 은행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은행들은 지난 2년간 정부예산 가운데 구제금융 명목으로 총 77조원을 지원받았다.

 

과거 대출을 받아 산 집들은 지금 가격이 대출 원금에도 못 미친다. 10만 가구의 가정이 매달 은행 빚을 갚느라 허리가 휠 지경이다. 7개 가정 중에 한 가정 꼴로 부동산 거품 붕괴로 직접적인 고통을 받고 있다. 성인 8명 중 1명은 실업자이며, 청년 실업률은 30%에 이른다. 향후 2년간 10만명이 일자리를 찾아 외국으로 나갈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아일랜드 정부는 추가 긴축과 세금 인상을 발표할 예정이어서 국민들의 고통은 더 심해질 전망이다. 오하라씨는 "우리 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완전히 잃었다"고 말했다. 구제금융을 받는 것에 대해서도 "빚에 시달리면서 또 신용카드를 받는 것과 같다""차라리 은행이 그냥 망하게 둬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영국 일간 가디언은 아일랜드 사태의 5()으로 모두 전직 은행장을 꼽았다. 데이비드 드럼 전 앵글로아이리시은행 최고경영자(CEO), 리처드 버로우즈 전 아일랜드은행장, 유진 시히 전 AIB은행장 등 5명이다. 이들은 부실 경영과 건설업체 대출 편중으로 심각한 부동산 거품을 양산했고, 일부는 압류를 피해 막대한 재산의 명의이전을 시도했다. 은행장들의 집 앞에서는 처벌을 촉구하는 집회가 열릴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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