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st do it? Just stop it!"

1996년 잡지 <라이프> 6월호에 게재된 사진 한 장은 스포츠 용품 산업의 거인 나이키를 곤경에 빠뜨렸다. 나이키의 멋진 마크가 선명하게 새겨진 축구공을 웅크리고 앉아 꿰매고 있는 12세 파키스탄 소년 타릭의 모습을 찍은 사진과 자기의 손가락보다 더 큰 바늘로 축구공을 만들고 있는 3살짜리 인도의 아기실기의 사진은 많은 미국인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으며 아동 노동을 사용하던 여러 비도덕적인 다국적 기업들에게도 쇼크를 주었다.

 

같은 해 10CBS의 뉴스 프로그램 ‘48시간도 베트남에 있는 나이키 공장의 착취 문제를 상세히 보도해서 불에 기름을 붓는 역할을 했다. 원래 나이키는 한국에서 하청 공장을 시작했으나 한국의 여성 노동자들이 노조를 조직하려 하자 인도네시아로 공장을 옮겼고 결국에는 베트남까지 옮겨간 것이었다. 다국적 기업들이 아웃소싱을 통해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세운 공장들은 인권 문제, 환경 문제, 노동 문제 등의 사각지대였다. 나이키 역시 아웃소싱을 통한 값싼 해외 노동력의 활용을 통해 경쟁 우위를 지키고자 했는데, 이러한 전략의 이면에는 아동 노동이라는 비참한 현실이 숨어있었던 것이다.

 

 

나이키는 이 사진들로 시민 단체로부터 지탄을 받았고 소비자의 외면을 받게 되었다. 쿨한 이미지는 탐욕에 가득찬 것으로 손상됐고 실적도 곤두박질쳤다. 격노한 시민 단체들은 베트남 노동 감시(VLW: Vietnam Labor Watch)라는 조직을 결성하고 1997년 베트남을 방문하여 현지 노동자 문제를 조사했고 이들의 충격적인 보고는 53명의 국회의원들과 각종 단체들이 참여하는 대규모 불매 운동으로 이어졌다. 1997년 나이키의 수익은 전년에 대비해서 절반으로 급락했고 주가도 반토막이 났다. 결국 나이키는 변화하지 않을 수 없었다. 회장 스스로가 사과하고 다시는 아동 노동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으며 마케팅 비용만큼 외주 공장 관리에 돈을 쏟아부었다. 적어도 나이키 스스로에 따르면, 하도급 공장을 선정할 때 비용 외에 작업 환경, 아동 고용 여부 등을 고려하였고 나이키 협력업체는 이런 기준을 엄격하게 지켜야만 했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아동 노동을 포함한 착취공장의 노동에 기초한 제품을 소비자들이 스스로 구매를 거부하는 불매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어 왔다. 하청업체의 노동조건에 대한 이런 노력의 시초는 1990년대 초 아이티의 야구공 제조 공장의 열악한 인권 문제를 제기한 가톨릭 선교사들의 모임이 그 시작이었다. 이후 선교단체와 자선 단체들이 과테말라, 멕시코 등 여러 나라의 착취 공장 반대 운동을 주도했고 노동 조합의 가세는 클린턴 정부의 노동부 장관 라이히가 이 문제를 공식적으로 조사하도록 만들었다. 현재 미국에서는 공정 무역(fair trade)”를 주장하며 50개가 넘는 미국 대학의 학생 단체들이 대학 내의 상점이 열악한 노동 조건에 처한 개도국 노동자의 노동을 사용한 제품을 팔지 않도록 하는 데 성공했다. 많은 소비자단체들도 이 운동에 참여하여 코스트코나 월마트 등의 기업들이 아동노동과 관련된 납품업체들을 바꾸도록 만들기도 했다.

 

이러한 세계적인 감시와 노력은 초국적 기업 스스로 그런 짓을 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하도록 만들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중시하는 경영에 대한 강조로 이어지고 있다. 너무 탐욕스러우면 벌을 받기도 하는 것일까. 이러한 착취 공장의 사용 여부는 사회적 책임을 잘 지키는 기업에 대한 투자(socially responsible investing)에도 중요한 고려 사항인데, 최근에는 좀은 도덕적인 기업에 투자하는 사회 책임투자가 수익률이 더 높다고 주장되기도 한다.(Domini, 2001) 이윤이 목표인 자본주의 사회, 그 체제의 핵심 기업의 주인인 주주의 행동주의가 심각한 착취를 막을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은 신기한 일이기도 하지만, 소비자의 반발은 그만큼 힘이 세기도 한 것이다.

 

이런 노력은 중요한 의미가 있으며 특히 개도국 정부의 취약한 감시 등을 고려하면 후진국 노동자의 열악한 노동 조건의 완화에도 어느 정도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독립적인 싱크탱크인 옥스팜(Oxfam) 등은 여전히 나이키를 포함하여 아디다스, 퓨마, 아식스 등 스포츠 용품 업체의 하청업체들의 아동 노동 문제와 노동자의 열악한 노동 조건 문제가 2004년 현재에도 심각하다고 보고하고 있다. 이들에 따르면 나이키와 리복 등에 의류를 공급하는 인도네시아의 하청업체 노동자들은 제대로 된 계약도 없이 법정 최저 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받으며 하루에 17시간, 1주일에 6일이나 일하며 성희롱과 같은 사례도 다반사로 발생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올림픽 엠블렘이 찍힌 의류를 생산하고 있는 이런 공장들을 예로 들며, 올림픽은 공정성과 인간의 성취를 나타내는 장이지만 정작 스포츠 스타들이 입고 있는 이들 제품의 생산 과정은 이러한 이상과는 정반대라고 아프게 꼬집고 있다. 많은 기업들이 아동 노동과 열악한 노동 조건 문제와 관련해서 90년대 후반 이후에는 나이키처럼 노동 규약(labor code)을 준수하고 있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하지만 실제로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으며 격화되는 국제 경쟁이 노동 조건을 더욱 나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Oxfam, 2004)

 

이와는 전혀 다른 측면에서 주의할 점도 존재한다. 후진국의 열악한 노동 조건에서 생산된 제품은 선진국에서 생산된 제품들을 경쟁에서 밀어낼 것이므로 후진국 기업들도 노동 기준을 지켜야 하며 그렇지 않은 경우 무역 보호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소위 블루 라운드(Blue Round)라 불리는 논의도 나타나고 있다. 공정 무역이라는 점에서는 이해도 가지만 이는 결과적으로는 후진국에게 불이익과 차별을 가져다 줄지도 모른다. 후진국에게는 상당히 어려운 수준인 선진국의 높은 노동 기준을 후진국에게 강요하는 것은 후진국 기업에 대한 무역 장벽으로 작용할 수 있으며 이러한 정책은 후진국 자신의 발전을 가로막을 수도 있다. 결국, 노동권의 보호와 후진국 기업에 대한 심각한 배제와 차별 사이에서 적절한 접점을 찾아내려는 지혜로운 노력이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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