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 위험으로 치닫고 있다 마틴 리스 / 케임브리지 대학교 천문학 및 실험철학 분야 석좌교수를 역임했고, 케임브리지 천문학 연구소 소장을 지냈다. 영국 학술원 원장이며, 케임브리지의 트리니티 대학교 우주철학 및 천체 물리학과 교수 겸 학장이다. 천문학 분야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부루스 메달 우주론상(2001)을 수상, 당대 최고의 이론천체물리학자라 평가받고 있다. 대표적 저서로 <우리의 마지막 세기>가 있다.

 

여론 조사 결과(적어도 영국에서는)를 보면 과학을 긍정적으로 여기면서도, 한편으로는 과학을 통제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이 생각은 자기 충족적이라는 점에서 위험한 생각이다.

21세기 테크놀로지는 세계뿐만 아니라 지구 환경, 우리의 생활 방식, 인간의 본성 자체를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바꿀 것이다. 우리는 과학을 통해 이전의 어떤 세대보다도 훨씬 더 큰 능력을 부여받았다. 과학은 막대한 잠재력을 제공하지만, 그 역기능 또한 엄청나다. 우리는 자연이 아니라, 인간의 행위로 재앙을 맞을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대부분의 과학적 발견은 선과 악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과학적 발견은 우리의 개인적, 정치적 선택에 따라 선과 악, 그 어느 쪽으로도 이용될 수 있다. 우리가 개인적으로 혹은 집단적으로 내리는 결정이 21세기 과학의 성과가 유용할지 파괴적일지를 결정할 것이다.

그러나 위험은 가장 알맞은 정책을 위해 정력적으로 운동을 하기보다는 숙명론에 빠져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게 될 것이라는 데 있다. 여기에서의 숙명론은 과학은 아주 빠르게 진보하고 있으며, 상업적, 정치적 압력의 영향을 아주 강하게 받기 때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는 믿음이다.

다양한 과학 활동들 가운데 어디에 물질적 자원과 인력이 배분되느냐하는 문제는 외부 요인들 사이의 복잡한 긴장의 결과이다. 그것은 순전히 지적인 측면에서 보든, 사회 복지를 고양한다는 측면에서 보든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떤 연구는 줄을 잘 탄 덕에 다른 분야보다 더 많은 지원을 얻어낸다. 그러나 환경 연구, 재생 가능 에너지, 생물 다양성을 위한 연구 등은 경쟁에서 밀린다. 의학 분야에서는 열대 지방의 전염성 풍토병보다는 암과 심장 혈관 연구 같은 부유한 나라에서 주로 나타나는 병에 지원이 집중된다.

과학이 어떻게 사용되어야 하느냐하는 문제는 과학자만이 아니라, 사회 각 분야의 토론을 거쳐 결정해야 한다. 우리에게 불필요한 연구와 개발을 하는 영역이 있을 수 있고, 자원과 인력이 낭비되고 있는 분야가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피해야 하는 과학적인 응용도 상당히 많다.

세계 모든 과학단체가 반대하고, 모든 국가가 금지하기로 동의한 연구가 어디에선가 진행되고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마약 밀매나 살인을 완벽하게 없애지 못하는 것을 보면, 과학의 오용을 막기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점점 더 긴밀하게 연결되어 가는 현대 세계에서 상업적 압력을 규제하기는 더욱 어려워졌다. 이런 시대에 과학을 완벽히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무리 윤리와 도덕을 강조하고, 강도 높은 규제 정책을 시행하더라도, 과학적으로나 기술적으로 가능한 것은 언제 어디에선가 누군가의 손에 의해 만들어질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맞든 틀리든 매우 위험하다. 왜냐하면 절망적인 비관론으로 이어지고, 안전하고 공정한 세계를 보증하고자 노력하는 의지를 꺾어버리기 때문이다. 미래는 숙명론적이지 않는 사람들의 노력을 통해 가장 잘 보호될 것이다. 그리고 이때에 과학은 가장 올바르게 이용될 기회를 맞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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