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형기 / HCD컨설팅 수석컨설턴트  
  최근 ‘코리아 엑소더스(exodus)’가 화제다. 고급두뇌가 국외로 빠져 나가는 인력이동 현상을 가리킨다. 한때 국비로 유학간 학생들이 학위를 마치고도 귀국하지 않고 현지에 눌러 앉는 사회적 문제가 대두하여 ‘브래인 드래인(brain drain)’으로 불린 적도 있었다. 점잖게 인재 빼가기 사업인 헤드헌팅이 다시 활황세라고 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경제원리가 적용되는 한 인력이동은 막을 방도가 없다. 그렇지만 이러한 현상이 요즘에 와서 더욱 문제시 된 것은 어렵게 모셔 온 인재들마저 이탈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들의 이탈과 함께 잠재가치가 큰 신사업·신기술 정보가 무더기로 경쟁국이나 경쟁기업으로 유출되고 있는 것도 문제점으로 대두되기 때문에 기업마다 ‘문단속’이 강화되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국내에서 개최된 ‘핵심인재, 이탈을 막아라’ 세미나에서 인재관리 비법을 공개한 모 기업의 경우 핵심인재 전담관리 인원만 수십 명에 이른다고 한다. 그러나 옛말에도 “열 장정이 한 도둑 못 막는다”고 했듯이 이미 마음이 떠난 사람을 붙잡을 도리는 없는 것이다.

  한 인사·조직 컨설팅사의 조사결과(2003/04 HR Trends Survey)에 따르면 이직하는 직원들의 사유는 이렇다. 승진시켜 주기 때문에(30%), 급여를 더 준다고 해서(21%) 떠난다는 정도다. 대부분 처우나 불만에서부터 이직을 결심하고 있다. 이 정도면 평소 면담 등을 활용해서 사전관리가 가능한 수준이다. 그러면 그 많은 전담인력들은 평소 무엇을 하는 것일까.

  이처럼 우수인재의 이탈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렇지만 더 심각한 것은 이탈을 막기 위해 동원되는 수단의 폐해다. 다음은 최근 언론에 보도된 뉴스기사이다.

  “A전자연구소에는 현재 5천여명이 근무하고 있다. 이 중 1천5백여명이 석·박사급 고급두뇌들이다. 이 연구소 건물은 보안을 위해 첨단시스템을 갖추고 모든 통화내역을 기록, 직원들의 신분증(bio tag)에는 위성추적장치(GPS)를 붙여 일거수일투족을 파악함은 물론 위급상황에서는 보안담당 부서에 직접 구조를 요청할 수 있다고 한다.”

  필자는 이 뉴스를 접하면서 공리주의자 벤담이 제안했던 원형감옥 ‘파놉티콘 (panopticon : 다 본다는 뜻)’을 떠올렸다.

  파놉티콘은 원형감옥의 구조로 죄수의 방은 항상 밝게, 중앙의 감시탑은 어둡게 유지됨으로써 중앙에 있는 간수가 죄수의 모든 것을 포착할 수 있는 반면 죄수는 간수가 자신을 감시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 수 없게 설계된 새로운 개념의 감옥이다. 파놉티콘에 수용된 죄수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항상 자신을 감시하고 있을 간수의 시선때문에 규율을 벗어나는 행동을 못하다가 점차 이 규율을 내면화해서 스스로 자신을 감시하게 될 것이라고 벤담은 생각했던 모양이다.

  벤담의 시대에는 실현가능성이 없어 보였던 이 신종 감옥이 오늘날에 와서는 오히려 디지털의 위력에 힘입어 ‘디지털 감시’라는 명목아래 부활된 것이다.

  “장사란 이익을 남기기보다 사람을 남기기 위한 것이다. 사람이야말로 장사로 얻을 수 있는 최대의 이윤이며 신용은 장사로 얻을 수 있는 최대의 자산”이라고 설파한 조선후기 거상 임상옥의 지적처럼, 정보유출을 막는 것도 중요하고 디지털 보안을 강화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작 더 중요한 것을 잃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자문을 구하고 싶다.

  이러한 수단·방법보다는 구성원들을 인격적으로 인정해주고 대우해 주는 활발한 조직내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통해서 인사관리의 중심에 디지털 시스템이 아닌 ‘사람’을 자리매김하는 것이 오히려 연말의 보너스 몇 푼보다 더 강력한 인재유지 수단이 될 수 있다.

출처 : 월간 인사관리(2005.12)

함형기컨설턴트 님의 글이 너무 좋아서 개인블로그에 지극히 개인적인 사용하였습니다. 문제가 있다면 언제든지 삭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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